문재인 대통령은 6일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방문은 중국·일본 방문에 앞선 것으로, 과거의 외교 프로토콜과는 다르다. 최근 미국·러시아 관계 악화까지 고려하면 2015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톈안먼 망루에 올라갔던 것에 비견될 수 있다. 동방경제포럼은 낙후된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에 필요한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된 무대다. 극동지역 개발이 한국에도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번 문 대통령 방문에는 한국이 러시아를 배려하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

그런데도 러시아의 안중에는 북한 핵무기 앞에 노출된 한국의 사정은 전혀 없는 듯하다. 문 대통령은 4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 원유 공급 차단과 북한 노동자 송출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은 다음 날, 그리고 한·러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5일 “현 상황에서는 그 어떤 제재도 소용없고 비효율적”이라서, “북한은 풀을 뜯어먹을지언정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송출도 다 해야 3만 명”이라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을 대놓고 묵살한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오는 11일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11일 표결 자체를 반대했으며,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은 “미국의 대북 도발 중단없이 북핵(北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책임을 미국에 떠넘겼다. 더 이상 북 제재에 동참할 수 없다는 어깃장이나 다름없다.

이런 러시아 태도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최근 미·러는 외교관 추방전까지 벌였다. 그리고 러시아는 지난달 말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원해 군사 훈련했으며, 14일부터는 대규모 기동훈련 ‘자파드 2017’을 진행할 예정이다.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러시아가 북한 제재에 동참토록 하는 게 화급한 과제다. 7일까지 계속될 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또 하나의 외교 실패로 기록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