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돈의문박물관마을 전경. 고풍스러운 한옥과 일제강점기 건물들이 어우러져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김선규 기자 ufokim@

돈의문박물관마을

2017년의 가을, 대한민국 건축계에서 가장 큰 축제가 열리고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대한민국건축문화제, UIA세계건축대회, 서울건축문화제 그리고 서울국제건축영화제 등 크고 작은 건축 관련 행사들이 동시에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처음 열리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2013년 공유도시를 선언한 서울시의 위상에 걸맞은 ‘아홉 가지 공유’를 주제로 삼아 다양한 전시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돈의문마을박물관은 ‘의도되지 않은 공유의 기념물’이다. 영국의 건축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베번이 쓴 ‘집단의 기억과 파괴’에 따르면 ‘건물과 공유공간은 다양한 집단이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하나가 되는 장소, 즉 집단의 정체성이 단단해지고 전통이 발명되는 장소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때 집단 정체성을 불러일으키는 의도된 기념물과 의도되지 않은 기념물이 있는데 의도되지 않은 기념물은 역사나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기념물의 파괴는 한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조선 세종 때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에 새문(돈의문)이 세워지면서 새문 안쪽의 마을이라는 이름의 새문안마을에서 시작됐다. 경희궁과 맞닿아 있는 이 마을은 낡은 한옥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어지럽게 남아 있어 도심의 불량 낙후지역으로 인식됐고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면서 경희궁에 걸맞은 근사한 근린공원으로 그 모습을 바꿀 예정이었다. 하지만 낡고 지저분하지만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건물과 골목길은 어느 사이엔가 서울시민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쩌면 점심을 먹으러 찾아들었던 골목과 정동길을 걸으며 마주했을 이 동네가 새문안마을의 이미지로 단단하게 정착됐을 것이다. 그래서 이 동네를 없애는 것은 최소한 이 장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시민들은 재개발사업으로 파괴될 예정이었던 이곳을 구해내는 것에 동의했고,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개막에 맞춰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시민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이미지 크게보기 옛 향수를 자극하는 골목길. 김선규 기자 ufokim@

돈의문박물관마을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작은 골목을 마주하고 서 있다. 음식점과 가게들이 있던 옛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일부 건물을 철거하고 마당을 만든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기존 마을이 갖고 있는 도시의 맥락을 유지한 탓에 골목은 여전히 좁고 미로 같다. 마을 안의 건물들도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려 한 노력이 느껴진다. 남겨진 대문의 문패가 이곳의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단지 새로운 용도에 맞게 건물 내부를 단장하고 건물들을 이어주는 계단과 통로가 이 마을의 변화를 말해준다. 건물 창밖으로 보이는 경희궁의 모습은 집 안에 전시돼 있는 작품과 조화되면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작품의 내용보다도 이 마을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들을 마을 곳곳에서 찾아내곤 즐거워한다. 이곳에 대한 추억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놀이터 같은 골목길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마을이 단기간 내에 일률적으로 그 쓰임새를 바꾸다 보니 어색하고 불편하다. 새로 보수한 한옥은 옛 정취를 끌어내기에는 너무 새롭다. 전시회에 무리하게 맞춘 탓인지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일부 작은 집들은 전시공간으로는 부족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행히 이 건물들은 행사가 끝나면 전시관과 공방, 서점, 유스호스텔, 식당 등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좀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공간을 공유하는 방법은 물리적인 방법 외에도 정서적인 방법이 있는데, 이 정서적 공유는 물리적인 공유보다 강력하다. 정서적 공유는 공동체 의식에서 발생한다. 공동체 의식은 공동체 문화로 발전하는데 공동체 문화가 잘 발달된 마을과 도시는 정겹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낙후돼 정리의 대상이었던 새문안마을이 돈의문박물관마을로 되살아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나오면서 도시와 마을을 지키려는 노력의 시작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 이웃과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고 나니 할 일이 생겼다. 내일부터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간단한 인사라도 먼저 건네야겠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