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진(왼쪽 세 번째) 쎄트렉아이 대표가 지난 1일 대전 유성구 전민동 본사 연구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개발한 위성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전 = 김낙중 기자 sanjoong@

2부 청년실업, 강소기업이 답이다 - ⑥ 쎄트렉아이

10년 근속땐 유급휴가 30일
퇴근 후 전화·메신저 등 자제
사유 얘기않고 자유로운 휴가
他지역 사원엔 주거비 대출도

이직 적고 지원자 매년 늘어
‘최고 직장’등에 잇따라 선정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직장과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돈’이 아닌 ‘삶의 질’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이란 의미의 ‘워라밸’(Work-And-Life Balance)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현실은 과연 그럴까. 불행히도 아직 ‘워라밸’을 충족하는 직장은 많지 않다. 지난 8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입사 1년 미만 신입사원 457명을 대상으로 회사 만족도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가량(46.8%)이 ‘현재 재직 중인 회사가 실망스럽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신입사원들은 ‘생각보다 다른 복지제도와 근무환경’(50.9%)을 가장 많이 꼽았다. 공기업·공공기관(41.7%)과 대기업(40.7%)보다 중소기업(50.0%)에 재직 중인 신입사원일수록 회사가 실망스럽다는 응답이 많았다. 대기업보다 인재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힘들게 확보한 인재를 유지하기 위해 ‘워라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주목할 만한 대상 기업 중 하나가 대전에 있는 중소기업인 쎄트렉아이다. 지난 1999년에 설립된 국내 유일의 위성 시스템 개발·수출 기업으로, 지금까지 20개 이상의 국내외 우주 프로그램에 참여해왔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거래하는 기업이 아닌 쎄트렉아이가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설립 초기부터 유지해 온 높은 ‘워라밸’ 수준 때문이다. 쎄트렉아이는 지난 2011년 세계 최대 인사조직 컨설팅 회사인 ‘에이온휴잇’(Aon Hewitt)으로부터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됐다. 이후 2013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일하기 좋은 우수기업’, 2016년 아시아 미래 포럼으로부터 ‘행복일터’로 선정되면서 대표적인 ‘워라밸’ 만족 직장으로 떠올랐다.

김병진(49) 쎄트렉아이 대표는 지난 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기 일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자율성으로, 이는 사내복지에서 비롯된다”며 “사내복지가 당장 들어가는 비용으로 보일지 몰라도, 인재를 오랫동안 보유하고 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쎄트렉아이는 다양한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쎄트렉아이가 제공하는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안식년제다. 5년 근속 사원은 유급휴가 15일, 10년 근속 사원은 30일 유급휴가 또는 1년 무급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근무시간 또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를 원칙으로 하되, 개인 사정이나 업무스타일에 따라 마음대로 출퇴근 시간 조절이 가능하다.

휴가 사유를 기재하지 않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 여직원은 매월 유급 보건휴가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시급 사안을 제외하고는 퇴근 후 전화, 메신저 등도 자제하고 있다. 이 밖에 쎄트렉아이는 다른 지역 출신 신입사원들을 위해 2년 무이자로 주거비용 5000만 원을 대출해 주는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정성근(46) 우주사업부문 수석연구원은 “10년 근무 후 1년 무급 휴가를 신청한 뒤 딸과 함께 캐나다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며 “1년 동안 영어 실력이 많이 향상돼 이전보다 더 중요한 업무를 맡을 수 있게 되는 등 안식년제를 통해 휴식과 자기 계발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박종수(32) 지상사업부문 1팀 선임연구원은 “개인 성향에 따라 일의 능률이 오르는 시간이 다른데,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의 보장은 일의 능률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해준다”며 “상사가 솔선수범해 가장 먼저 휴가를 떠나고 어떤 날에 휴가를 떠나도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가정 양립 프로그램 운영 성과에 쎄트렉아이도 놀라고 있다. 쎄트렉아이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이직률이 3.8%에 불과하다. 중소 제조업체들의 연평균 이직률이 약 11∼12%에 달한다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낮은 이직률은 동종업계에서도 유명하다. 매년 입사지원자들이 늘어나면서 연평균 고용증가율이 무려 15.7%에 달한다. 쎄트렉아이는 매년 15∼20명 사원을 꾸준히 선발하고 있고, 입사경쟁률 또한 공채 기준 30대 1로 높은 편이다. 매출액 또한 2014년 260억 원, 2015년 305억 원, 2016년 346억 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김 대표는 “쎄트렉아이는 지역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인재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데, 사내복지는 인재를 지역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며 “면접을 3∼4번이나 본 지원자도 있을 만큼, 업계에서 쎄트렉아이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자랑했다. 김 대표는 또 “세상이 점점 ‘워라밸’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어 중소기업은 미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일·가정 양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전 =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