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에 육박하는 전국의 법관 가운데 독특한 품성이나 튀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그런 경우들이 있었고, 대부분 퇴직해 변호사나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사법부 내부의 자정(自淨) 기능이 어느 정도 작동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해결되면서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재판은 곧 정치(政治)”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 내용이 ‘가카새끼 짬뽕’처럼 개인의 정치 성향을 강하게 표출했던 기존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런 인사들이 사법 권력의 주류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두 측면에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인천지법 오현석 판사는 지난 30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등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른바 ‘원님 재판’을 부르고, 국민의 법치 신뢰도 허물게 되는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판사가 자연인으로서 소신을 가질 수 있지만, 판결은 오직 ‘헌법과 법률’에 입각해야 하며, 사법부 전체로서도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정치적 중립(법관윤리강령 제7조)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판사가 자신의 성향에 따라, 특히 정치적 선호를 고려해 판결하면 ‘법의 지배’ 아닌 ‘판사의 지배’다. 최고 재판관들의 숙고 끝에 성립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조정되어 온 대법원 판례를 ‘남의 해석’이라고 치부한다면 법적 안정성은 붕괴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탈이 단지 한 판사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 판사는 법원 내 진보적 성향의 연구모임이라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최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재조사하는 위원회 위원으로 일할 만큼 중심 멤버다. 재조사를 요구하며 10일 넘게 금식(禁食)하던 중 이 연구회 초대회장을 지낸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명되자 중단했다. 야당이 김 후보자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반대하고 있어 김 후보자가 국회 임명동의를 받아 대법원장에 취임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논란을 빚던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1일 자진 사퇴했다.

그러나 사법부 내에서 ‘오 판사’류(類)가 부상하는 경향은 뚜렷해 보인다. 사법부 재구성에 큰 권한을 가진 문 대통령은 물론 추미애 민주당 대표 등 여권이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명숙 전 총리 만기 출소에 “기소도 재판도 잘못” “억울한 옥살이”라고 했던 추 대표는 헌재소장 임명동의 표결이 무산되자 “적폐 세력의 반기”라고 주장했다. 사법부 스스로가 ‘코드 사법부’ 전락을 막기 위해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