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허남성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국방대 명예교수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안보 상황은 지금 중대한 결단의 변곡점에 놓여 있다. 이러한 위기 국면은 북한 김정은의 무모한 핵 및 미사일 폭주에 의해 빚어진 것이지만, 문제는 그의 폭주를 제어할 뾰족한 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도 7차례에 걸쳐서 9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그중 2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의 고각 발사였다. 북한의 ICBM은 일종의 ‘게임 체인저’이다. 미국의 대도시를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하고, 나아가 동맹의 균열(de-coupling)을 도모해 한국을 미국과 분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무릅쓰면서까지 미국이 과연 서울을 지키려 하겠는지를 헤아려 본다면 이것이 왜 게임 체인저인지 이해하게 된다. 이윽고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이른바 핵군축회담을 벌여 북·미 평화협정을 맺고, 이로써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소멸되면 ‘비핵 한국’은 적화통일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한·미 양국에서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백가쟁명식의 대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를 대별해 보면,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협상 무대로 이끌어 타협으로 해결한다는 외교적 해법과, 참수·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예방타격(preventive strike) 등의 군사적 해법으로 나뉜다. 그러나 지금까지 6차례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는 중국이 제재의 ‘뒷문’을 느슨하게 열어주는 바람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외교적 해법이 한국에 악몽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는 큰 이유는 자칫 비핵화가 아니라 ‘동결’로 사태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며, 이 경우 우리는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 군사적 해법도 일단 유사시 북한의 반격으로 확전될 경우 한국의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예상돼 현실성이 떨어진다.

외교나 군사적 해법이 아닌 다른 대안은 없는가? 흥미롭게도 최근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닛 박사는 ‘저강도 군사적 행동(military action)’을 제시했다. 그는 위험성이 높은 ‘군사적 공격(military attack)’ 대신 동해에서 평양 상공을 거쳐 서해 공해상에 이르는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라든지, 북한 영공 상층부를 가로지르는 고고도 정찰비행, 그리고 발사된 북한 미사일의 요격 등 저강도의 ‘군사적 행동’을 제안했다. 이는 ‘말 폭탄’만 가지고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억제할 수 없기에 행동으로 억제 의지를 과시하는 비교적 온건한 군사 행동에 속한다. 사실 외교나 군사적 해법이 마땅치 않다면, 저강도 군사 대응을 포함한 다양한 대북 억제 체제를 구축하고 북한 내부 또는 중국을 설득해 북한의 레짐 체인지가 이뤄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궁극의 해결책으로, 우리도 핵 보유를 고민해 봐야 한다. 핵에는 핵으로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오직 북한의 핵 억제를 위해 보유하며, 먼저 사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한반도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반입을 꺼리는 미국을 압박해 북한 비핵화 달성 시점까지 미국 전술핵무기를 ‘한시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무효가 된 마당에 북한 비핵화를 돈으로 살 수 있겠는가, 영토로 맞바꿀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