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에는 국회(제3장)가 대통령(제4장 제1절)보다 먼저 나온다. 이처럼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대표를 뽑아 통치를 위임하는 대의제(代議制), 즉 간접민주주의를 국가 거버넌스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때로는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이지만 그래도 ‘인민민주주의’보다 낫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 원천을 ‘촛불 혁명(革命)’에 두고, 의회 민주주의를 폄훼하는 듯한 언행을 거듭 표출하는 것은,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들을 이해하더라도 걱정스럽다.

취임 100일을 맞아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인수위원회 보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이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을 못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 배경에는 국회, 특히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야당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기폭제가 된 촛불 ‘시위’를 계속‘혁명’으로 지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의 번거로운 입법 절차를 국민의 힘으로 밀어붙여 국가·국정 시스템을 바꿔보려는 생각을 가진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우리 헌법에도 4·19 민주이념 계승, 국민투표와 주민투표, 청원권과 배상청구권 등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대의제에 대한 보완 수단들이다.

대통령은 헌법 수호의 최고 책임자이다. 국회가 여소야대라면 협치가 불가피하다. 최선을 다해 야당을 설득하고, 설득에 실패하면 타협해야 한다. 헌법상의 절차를 우회해 촛불·댓글을 요청하고 “국민의 집단지성과 함께 나가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탄핵을 혁명으로 규정해선 곤란하다. 헌법 규정에 따라 헌법재판소 심판이 이뤄진 것일 뿐, 민주적 절차와 체제 정체성 자체를 뒤엎으려 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위헌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