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에서까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공개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만이다. 21일 시작되는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미국 주류 언론에서는 미군 철수 문제는 물론 훈련 축소·중단 보도가 많아졌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당장 현실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확산되고, 행정부 인사들까지 공개 언급하는 기류 자체는 예사롭지 않게 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로 불리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선임고문 겸 수석전략가가 ‘북핵 동결 대가로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16일 보도됐다. 그간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이 북핵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맞교환 카드를 제안하는 등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당국자들의 기명 발언은 그 차원이 다르다.

우선, 이런 기류 변화의 배경이 문제다. 한·미 안보 당국자들이 동맹의 견고함을 강조하지만 균열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쟁은 기필코 막을 것”이라며 한·미 협의를 강조했다. 이는 북한보다 ‘모든 옵션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미국 측을 경고한 것으로 해석됐다. 17일 기자회견에서도 “군사 행동엔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6월 방미 전엔 “북한의 핵·미사일은 뻥”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 대통령을 우회한 채 논의될 가능성이다. 첫째 가능성은 미·중 담판이다. 이미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이 공개적으로 내놓은 방안이다. 둘째 가능성은 미·북 간의 막후 거래다. 예방공격에서 협상까지 모든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일부 있을 수 있는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대북 압박에 앞장서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군사 행동부터 겨냥하면 결국 미국은 중국이나 북한과의 협상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느 경우든 문 대통령의 입지는 줄어든다. 그러지 않아도 린치핀, 코너스톤 등으로 대등하게 불리던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최근 그 강도에서 차이가 감지되고 있다. 안보가 엄중한 국면에서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 내 기류의 미세한 변화까지 주의 깊게 보고 정교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