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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는 번역하는 순간, 상실된다”고 했다. 그러나 번역이 없었다면, 외국인들은 아예 프로스트의 시를 읽을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번역가는 내 최고의 동반자다. 번역이 없었으면, 나는 결코 우리나라 국경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과연 한 나라의 문학은 번역을 통해서 세계문학이 된다. 그러나 번역본이 원작과 똑같을 수는 없고 간혹 오역(誤譯)도 발생해서, 번역은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 “번역은 여인과도 같다. 아름답지만 충실하지 않을 수도 있고, 충실하지만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 러시아 시인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옙투셴코도 번역의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번역을 잘하려면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통달해야 하고, 문학적 센스가 뛰어나야 하며, 문장력도 탁월해야 한다. 문제는 그 세 가지를 다 갖춘 사람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최근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에 여기저기 오역이 발견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스미스가 한국에 오래 살았거나, 번역원 부설 교육기관인 ‘번역 아카데미’를 다녔더라면 오역이 훨씬 줄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스미스는 그 두 가지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 결과, 스미스는 문학적 센스와 문장력은 뛰어났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약해서 정확한 번역을 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번역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번역은 도착어 독자들의 감성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확한 번역이라도 현지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으면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역을 찾아내어 질타하는 것보다는, 따뜻하게 격려해주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에 고마워하며, 좋은 원어민 번역가를 더 많이 양성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원어민 번역가들이 한국어의 뉘앙스나 한국 문화의 이해 부족으로 오역하는 경우는 많다. 예컨대 상대방 아버지의 높임말인 춘부장을 디렉터 춘(Director Chun)이라고 번역하거나,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아들을 부르는 호칭인 “애비야!”를 “파더(Father!)”로 번역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오역을 피하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은 원어민 번역가들을 위한 번역상담 전용 창구를 상시 운영해서 자문을 해주고 있으며, 번역가로부터 완역 원고가 들어오면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감수를 의뢰해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있다. 번역은 잘하면 원작을 살리지만, 잘못하면 원작을 망치기 때문이다.

영화도 원작 소설을 망친 경우도 있고, 원작보다 더 잘 만든 경우도 있다. 예컨대, 존 휴스턴 감독의 ‘모비 딕’은 에이햅 선장역을 맡은 그레고리 펙이 너무 오버해서 원작을 훼손했다는 평을 받는다.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는 “그레고리 펙은 마치 미친 링컨처럼 보였다. 그는 차라리 미친 고래 역을 맡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고 혹평했다. 반면에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거친 원작 소설 ‘미국의 비극’을 아름다운 영상시로 승화시켰다는 호평을 받는다.

한국문학번역원(www.ltikorea.or.kr)은 한국의 문학과 문화를 해외에 알려 세계 문화의 형성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문학을 36개 언어로 번역해서 해외에서 출간하기 때문에, 우리 작가들은 번역원을 통해서 세계 문단에 알려지게 된다. 작품의 번역 출간이 선행되지 않으면, 해외에서 문명을 떨치거나 국제적인 문학상을 수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번역과 훌륭한 원어민 번역가의 양성은 매우 중요하다.

번역원은 작가가 아니라, 번역가와 해외 출판사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작가 지원은 번역서가 출간됐을 때, 해당 작가의 현지 프로모션 행사 파견 정도여서, 거기에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가’에 대한 차별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실제로 번역원은 2014∼2016년 중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고 알려진 작가 101명과 그들이 연관된 686건의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작가의 해외 파견은 번역서가 출간됐거나, 해외 기관에서 번역 관련 지명 초청이 있을 때에만 이뤄진다. 따라서 번역 지원 신청이 들어오지 않아 역서가 없는 작가의 해외 파견은 번역원 소관이 아니다.

번역원은 외국어가 유창한 우수한 직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제 기관이어서, 사시사철 외국인 번역가들과 교수들, 해외 출판인들과 에이전트들, 그리고 외국 언론사 기자들과 주한 외국 대사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래서 번역원에서 일하려면 우선 외국인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만큼 외국어, 특히 영어가 자유로워야 한다. 해외 출판인, 편집인, 에이전트, 문학 교수들을 망라하는 광범위한 국제 네트워크도 갖고 있어야 하며, 우리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해서 해외에서 출간해본 경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 비로소 번역의 어려움과 해외에서의 번역 출판 과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와 무관해야 한다. 탁월한 작가이거나 해외에서 인기가 있는 작가라면 정치 이념을 떠나 누구나 번역해서 홍보해야 하는데, 이념의 차이로 차별을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은 ‘번역’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이제 막 세계를 향해 비상을 시작했다. 회항하거나 불시착하지 않고 이대로 높이 날아올라, 경천동지(驚天動地)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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