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시복 벽강종합건설㈜ 회장이 지난 11일 제주 오라CC 남코스 18번 홀 그린 주변 러프 지역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다.

이시복 벽강종합건설㈜ 회장

올해로 골프 구력 20년째인 제주 토박이 이시복(63) 벽강종합건설㈜ 회장은 요즘도 언더파를 유지하는 출중한 기량을 뽐낸다.

지난 11일 제주 오라 골프장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때마침 이곳에서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삼다수 여자오픈 1라운드가 열렸다. 이 회장은 전날 프로암에서 박소연과 라운드했으며 응원하기 위해 골프장에 나왔다. 이 회장은 제주 실력파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드라이버 샷으로 230m를 날리며 10번 라운드 중 7∼8차례는 70대 초·중반 스코어를 남긴다. 한 달 평균 10회 이상 라운드하며 1∼2차례 언더파도 챙긴다.

이 회장은 “그동안 배드민턴이나 축구 등 다른 운동을 해봤지만 나이 먹어가면서 가장 적합한 스포츠는 골프”라면서 “골프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고 장시간 걷을 수 있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특히 골프는 운동하면서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창업 후 몇 년도 안 돼 찾아온 외환위기 고비를 넘기면서부터. 40대 초반이던 그는 회사 일로 늘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지인 상당수는 골프장에 다니면서도 순탄하게 기업을 경영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 상대에서 빠지기 일쑤였다. 당시만 해도 제주의 골프 여건은 지금과 달랐다. 지금은 제주 도내에만 골프장이 30개나 되지만 20년 전엔 제주, 오라, 중문CC 정도만 있었기에 부킹도 어려웠다. 연습장에 다녔지만 레슨프로도 거의 없었다.

골프를 시작하자 지인이 아널드 파머 레슨 비디오를 선물했고 이 회장은 그것을 참고하면서 연습했다. 이렇게 2년 동안 필드 한 번 나가지 않고 연습장만 다녔다. 제주CC에 친구와 처음 나갔다. 연습장에서는 그렇게 잘 맞던 드라이버 샷이 좌우로 종잡을 수 없이 날아가는 통에 이후 7번 아이언으로만 쳤던 기억이 있다.

이 회장은 이후 아침, 저녁으로 두 차례 연습장을 찾았고 짬이 나는 대로 레슨비디오를 시청하는 등 골프에 심취했다. 하루에 연습 공을 10박스나 쳤을 정도. 이렇게 3∼4년을 보내니 90대에 진입했다. 2년 뒤 오라CC에서 78타를 남겼다. 입문 8년 만의 첫 70대 스코어였다. 70대 스코어가 나오면서부터 골프가 쉬워졌고 재미를 더 붙일 수 있었다. 몇 달 뒤 첫 언더파가 나왔다. 50대 초반에야 물이 오르기 시작한 이 회장의 베스트스코어는 4언더파 68타. 오라CC 동·서코스에서 작성했다. 골프를 배운 지 10년 만이었다.

이 회장은 “지난주 오라CC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로 2언더파를 챙겼다”면서 “하지만 클럽 챔피언이나 아마추어대회에는 아직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몇 해 전 제주지역의 한 신문사가 주최한 제주지역 20개 고교대항전에 출전했다. 그가 유일하게 참가한 골프대회. 이 회장은 2인 1조로 구성된 한림공고 대표로 출전해 3연패를 이끌었다. 이 회장은 “한 라운드 최다 7개 버디, 사이클 버디 3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50대 시절엔 240∼250m의 장타 덕에 파 5홀에서 2온 시키곤 했다”고 귀띔했다. 2011년 오라CC 동코스 3번 홀(파3)에서, 150m 거리에서 7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을 작성했다. 홀인원은 한 번뿐이지만 이글은 50개가 넘는다. 퍼팅이 약점이어서 이 정도란다.

지금도 떠올리면 아찔한 에피소드 한 토막. 10년 전 중문CC 해안코스에서 라운드했다. 파3인 8번 홀에서 앞 팀 사인을 받고 180m 거리에서 4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날렸다. 잘 맞았다고 생각했던 볼이 내리쬐는 햇빛 탓에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잠시 후 비명이 들렸다. 앞 팀 일행 중 한 명이 그린 옆 야자수 뒤에 숨어있다가 “볼∼!” 하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내밀다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진 것.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이 회장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 한숨을 돌렸다. 오전 2시를 넘겨 집으로 돌아온 이 회장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몇 시간 뒤 병원으로 다시 달려갔더니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환자가 없었다. 병상에서 짐을 챙기던 그 환자의 아내로부터 “남편이 아침에 골프 약속이 있어 나갔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야 이 회장의 긴장은 풀렸다. 이후 이 회장은 파 3홀에서 길게 날리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앞 팀 사인을 받고 칠 때면 한 클럽을 짧게 잡는 편이다.

이 회장은 “제주에선 예약 없이 골프장에 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점심 먹다가도 일행 중 한 사람이 갑자기 골프장에 가자고 발동을 걸어 30분 안에 골프장에 도착해 라운드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 회장은 “골프에 너무 빠질 수 있으니 적당히 선을 긋는 자제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제주에서 태어나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공직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23년 동안 종합건설회사를 꾸려왔다. 다음 달 28일이면 창립 23주년을 맞는다.

아파트 건설 및 토목, 교량 등 건설 외길을 걸어왔다. 최근 들어 제주지역 건설 경기가 침체했지만 이 회장은 연 100억 원대 수주 등 안정적으로 기업을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대한건설협회 소속 제주지역 종합건설사를 회원으로 둔 제주건설협회 회장직을 올해로 6년째 맡고 있다.

이 회장은 “제주지역 건설사들의 신규 수주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나 감소했다”면서 “지역건설사들의 생존을 위해 국가기관 및 공기업이 발주하는 모든 공사에 지역 의무 공동 도급을 확대하는 등의 대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제주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