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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지난겨울 한파는 촛불이 녹였다. 촛불이 녹여낸 것은 한파만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어두운 실체도 녹여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까? 민주시민으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후회하는 일은 없진 않았을까? 그렇다면 민주시민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민주사회를 처음 열었던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던질 각오가 돼 있었다.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시신을 앞에 놓고 이렇게 연설했다.

“지금 이곳에 계신 분들의 죽음은 인간의 탁월함을, 처음으로 드러내셨든 마지막으로 견고히 하셨든 분명하게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 이분들은 성공의 불확실함은 희망에 맡기고 당장의 일은 자신들이 스스로 행하는 것이 맞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항복해서 살아남는 것보다 저항하고 고통을 당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치욕적인 말은 피하고 현실은 몸으로 견뎠고, 운명의 순간에 두려움이 아닌 영광의 절정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그들의 용기가 가상하다. 대한민국 국민도 지난 촛불 항쟁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결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결기나 의지뿐만이 아니라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나오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민주주의의 정의를 잘 요약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바로 ‘국민에 의한’이다. 이게 참 힘들다. 국민을 위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정치인들의 말은 귀가 닳도록 들어 왔다. 민주주의가 완성되려면 ‘국민에 의한’ 정부를 잘 작동시켜야 한다. 이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정치인의 소임이고 그런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제대로 된 나라다.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내기 위해 민주시민의 역량이 필요하고, 국가는 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한다.

필자는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소통 능력을 강조하고 싶다. 민주주의와 소통은 찰떡궁합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고대부터 많은 사상가가 ‘말 교육(paideia ton logon)’을 강조해 왔다. 고대의 말 교육은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시민들은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덕목을 익혀야만 했다. 이 덕목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이 소피스트였다. 그 가운데 이소크라테스는 특별히 민주시민 역량교육의 필요성을 간파하고 학교를 세웠다. 물론 그의 학교에서 가르친 것은 엘리트 교육이었지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 훌륭한 연설로 공동체 의식을 갖춘 시민들을 육성해내는 데 일조했다. 그는 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현명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한 교육에 헌신했다.

우리도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민주시민 교육을 위해 무엇보다도 관련 법 제정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이 경제 수준을 못 따라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용기와 참여의식은 활성화돼 있으나, 민주시민의 능력과 지식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으로 보인다. 국가는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전문가를 육성하고, 시민교육을 위한 시설을 확충하는 데 많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민주시민 교육은 걸음마 단계다. 지속 가능한 민주시민 역량교육을 위해 속히 법적 기반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