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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엽 문화부 선임기자

‘종교인 소득 과세’ 시행을 반년 앞둔 지난 6월 말 기획재정부 등 정부 측과 종교계가 처음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종교인이 전해준 얘기다. 종교인들이 과세 대상과 기준이 불분명하고, 종교별 특수성이 반영돼 있지 않으며, 기본 안내서조차 못 보았다며 관련 부처의 준비 부족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자 정부 고위관계자가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참∼, 힘드네요. 국회로 가셔야겠네요….”

그때 떠오른 게, 역시 정부 부처 차원에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구나, 간담회는 차후를 대비한 ‘알리바이’구나, 지방선거가 있잖아? 결국 국회 쪽에서 ‘액션’을 하겠구나, 하는 예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의 대표 발의로 28명의 의원이 종교인 소득 과세를 2년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냈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많기는 하지만, 정의당을 제외하고 여야 4당 의원들이 고르게 발의에 참여했다. 민주당 의원 3명은 뒤늦게 발의를 철회했다.

또 하나, 어느 불교 종단의 소임을 맡은 스님에게 들은 얘기다. 스님은 지난 6월 중에 지방 국세청에서 종교인 소득 내역에 관한 조사 공문을 받고 담당자에게 이런저런 문의를 하면서 “지방의 산중 말사 스님들은 우리도 연락이 어려운데, 세무당국에서 어떻게 할 거냐”고 걱정을 해줬다. 그 세무 공무원은 “국회 입법이 된 게 언젠데, 우리가 준비를 안 했겠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그거잖아요”라고 하더란다. 우리 공무원의 행정능력을 누가 과소평가할까. 준비를 안 한 게 아니라, 정치권에서 다시 시기를 조율할 게 뻔해 ‘들고 있었다’고 하는 게 맞는다. 종교인들의 ‘관련 부처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질타에 그저 “참, 힘드네요”라고 응답하면서 말이다.

국내 주요 종교 중 개신교, 그중에서도 개신교의 대표 연합단체를 좌우하는 일부 대형 교회에서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가장 드세다. 종교인 과세는 일부 대형 교회의 초고소득자를 제외하면 평균 실효 세율은 미미하다. 김진표 의원은 정치권의 대표적인 개신교 신자다. ‘오비이락’이겠지만, 법안을 대표 발의한 다음 날 한국기독교복음단체총연합이 김 의원을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김 의원은 올 초 문재인 대선후보 선대위원장 때 종교인 과세가 예정대로 시행될 것이라고 했었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뒤 돌연 종교인 과세의 유예를 언급하더니 결국 ‘유예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새 정부의 5년간 정책을 조율하는 책임을 졌던 그가 개인의 종교적 소신만으로 종교인 과세 유예 법안을 냈을까. 정치권 내에서는 공공연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사안을 건드려 종교계와 척을 질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들이 나온다. 눈치 보는 정부 대신 국회가 총대를 멨다는 말도 들린다. 종교인 과세는 정부의 세수 확충에 눈에 띄는 도움을 줄 규모는 아니지만, 늘 ‘납세 형평성’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다. 선거를 앞두고 종교계의 ‘표심’만 의식한다면, 아마도 선거가 없어지지 않는 한 종교인 과세는 시행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치권의 의지다.

ejy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