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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몇 년 전, 올림픽 경기 중계권을 둘러싼 방송사의 취재권 확보 경쟁이 사회적인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다. 경쟁사를 배제하고 독점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과도한 부담을 감수한 탓에 높은 중계권료를 지불하게 된 것이다. 결국, 방송사들은 국민의 시청권 보장과 합리적인 중계료 책정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통해 과도한 지출을 절약하고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협력이 경쟁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협력을 통해 게임의 결과를 더 나은 균형(equilibrium) 상태로 바꾸려는 노력은 지금 해운시장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그간 국내 정기 컨테이너 시장에서는 수년째 ‘치킨 게임’이 진행 중이었다. 한진해운이 파산하게 된 것도, 주요 컨테이너 선사의 영업이익이 최근 3년간 50% 이상 줄게 된 것도 시장의 과열 경쟁과 무관치 않다. 결국, 국적 컨테이너 선사들은 위기 타개를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뜻을 모으고, 오는 8일 ‘한국해운연합(Korea Shipping Partnership)’을 출범시킨다.

이는 다음 3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째, 해운업 재도약을 위한 업계 스스로의 노력이라는 점이다. 새 정부는 향후 5년간 국정과제로 ‘해운산업 재건’을 제시하고, (가칭)‘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친환경 선박 대체건조 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부의 힘만으로는 해운업 재건을 온전히 이뤄내기 어렵다. 해운업을 이끌어가는 주체인 국적 선사가 변하지 않고는 한국 해운의 위상 재정립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해운연합을 통해 업계가 공동으로 마련한 개선책에 정부의 지원이 함께한다면 해운 재건 프로젝트가 한층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로, 해운연합 결성은 협력과 상생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게임 이론의 권위자인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의 지적처럼, 반복되는 게임 구조 안에서 상호 호혜적인 협력 구조를 형성한다면 당장에는 불편함이 발생할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모두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 해운시장과 같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는 과당경쟁보다 협력이 모든 참여자에게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해운연합의 결성은 새 정부의 국정 목표 중 하나인 ‘더불어 잘사는 경제’와도 부합한다. 대형 선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중소선사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해 선사 간 상생 구조를 마련하고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 한국해운연합은 이러한 ‘더불어 잘사는 해운’을 구현하기 위한 통로가 돼 줄 것이다.

끝으로, 해운연합은 대한민국 해운의 미래 먹거리 창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미 기존의 해운 시장은 포화 상태다. 신시장 개척은 초기 투자 비용으로 인해 개별 선사가 혼자 추진하기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해운연합은 해외 신항로 개척과 거점 항만 투자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협력체로 작동, 선사들의 부담을 덜어줄 예정이다. 개별 선사가 부담해야 했던 초기 부담을 완화할 경우 더욱 다양한 시범 사업을 시도할 수 있고,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타이밍도 좋다. 한국해운연합이 본격 활동을 시작하는 내년에는 포괄적인 해운업 지원 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도 설립될 예정이다. 금융 지원뿐만 아니라 선사들의 시장 리스크 관리, 신시장 개척 지원, 공사와 연합의 해외자산 공동 투자 등이 진행될 경우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선사 간 협의체 결성을 넘어 정부와 해운업계의 공동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 해운시장의 우월 전략이 ‘무한경쟁’에서 ‘협력’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