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작성·실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8명 중에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7명이 1심에서 유죄(有罪)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27일 “범행을 정점에서 지시하고 실행 계획을 승인·독려했다”며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에게 직권 남용과 국회 위증에 따른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교육문화수석 등도 같은 죄목에 징역형을 선고했다.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위증 혐의만 인정됐으나, 법원이 블랙리스트 실체와 불법성을 판결로 확인한 것은 의미가 크다.

재판부가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정부 지원을 배제한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한 취지대로 문화·예술 활동은 정부가 통제할 일이 아니다. 정부 입맛에 따라 예산 지원 여부를 통제의 무기로 삼는 것은 문명국가의 수치이기도 하다. 물론 반헌법적·반사회적 성향이 확연한 개인이나 단체까지 국민 세금으로 지원할 순 없다. 법원이 “정책적으로 지원 배제 조치가 이뤄졌다면 적법 절차 속에서 투명하게 진행됐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위법하고, 은밀하고, 집요한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밝힌 배경도 다를 리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정부도 리스트를 별도로 작성·관리하진 않았을지언정, 좌파 성향 문화·예술인에 대한 편파 지원을 노골화했었다. 사실상 정권 입맛이 기준(基準)이긴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 악습을 끊기 위해, 객관성·투명성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의 기준을 이제라도 규범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