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오랫동안 연체를 하고 있으나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빚을 전액 탕감해주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대상은 얼추 80만 명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6일 “장기 소액 연체자 중 상환이 어려운 계층에 대해선 과감하게 채무 정리를 돕겠다”며 “8월 초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대책이 구체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도 대선 때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장기 소액연체 채권(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을 소각해주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정부가 개인의 빚을 깎아주는 정책은 예전에도 많았다. 역대 대통령마다 표를 의식해 채무 부담을 줄여주는 공약을 내걸었고, 이중 상당수가 이행됐으니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문 정부의 탕감 대책은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선, 원금을 100% 없애주는 정책은 유례가 없다. 지금까지 선처를 후하게 베푼다 해도 원금을 일부 감면해주고 이자를 낮춰주는 ‘채무 재조정’선을 넘지 않았다. 빚 탕감 범위도 파격적이다.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기업에 이어 민간 대부업체로까지 확대한다니 그렇다는 얘기다. 국민행복기금의 경우 대상은 40만3000명, 전체 채권 규모는 1조9000억 원 정도다. 대부업체도 수십만 명 대상에 장기연체 채권도 2조 원가량이다. 문 정부가 내건 ‘사람 중심 소득 주도 성장’의 또 다른 혁명적 실험인 셈이다.

장기간 빚 독촉에 시달리는 장기 연체자가 정상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정부의 취지는 일면 타당하게 들린다. 하지만 ‘빚 전액 탕감’은 모럴 해저드의 극치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정책이다. 이 정책이 확정되면 ‘빚을 안 갚고 버티면 언젠가 탕감해주겠지’ 하는 기대를 더 키우게 된다. 그동안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파산 등의 제도를 통해 빚을 성실히 갚고 있는 이들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금융의 생명인 신용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으니 더욱 심각하다.

빚 탕감은 대상과 규모를 최소화하되 저소득층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의 근로 의욕을 높여줘야만 성공한다. 이자를 면제해주거나 채무 일부를 탕감한 후 분할 상환 등 채무조정을 재취업·재활 프로그램 등 소득 창출과 연계하는 방식이 정도(正道)다. 무모한 빚 전액 탕감 정책은 재고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