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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렬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였다. 이제 핵무기 실전 배치는 시간문제다. 이대로라면 그 어떤 압박이나 대화 제의도 핵무장을 향한 북한의 질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미국행 비행기에서 ‘선 북핵 동결, 후 핵 폐기 대화’의 단계적 접근 구상을 밝혔고,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베를린 담화를 이어갔다. 지난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오는 2020년까지 ‘완전한 핵 폐기-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합의를 위한 로드맵을 올해 안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무게중심은 ‘조건부 대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정작 북한의 핵 동결을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 방법론은 없다.

지난 4일 북한이 시험발사한 ‘화성-14형’ 탄도미사일에 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회람 후 러시아는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7월의 안보리 의장국인 중국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러는 이날 모스크바에서 발표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연합성명’에서 북한의 핵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잠시 중단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다루자는 이른바 ‘쌍잠정(雙暫停) 쌍궤병행(雙軌竝行)’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북한에 대한 원유 및 석유제품 수출과 북한 노동자 고용 등을 금지하는 독자적 제재 방안을 마련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압박 강화와 중·러의 반대가 대립하는 구도 속에, 한국 정부의 조건부 대화론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북핵을 둘러싼 한·미·중·러의 상호 의심과 갈등 속에 북핵 시계는 점차 한국에 대한 비대칭 전력 우위 확보와 미국 본토에 대한 실질적 위협 단계로 다가서고 있다. 코스피(KOSPI)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으나, 이대로라면 언제 북한 리스크가 한국 경제를 덮어버릴지 모른다. 북한의 ‘핵 질주’를 막고, 북핵에 대한 확실하며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폐기를 ‘보장’할 수 있는 이해 당사국 간의 ‘대타협’밖에는 대안이 없다.

핵심은,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핵무장에는 반대하고 있는 만큼 해결 방법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협조를 얻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의구심도 떨쳐버려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우리 시각에서 본다면 사드 배치는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위협에 대한 안전감 확보 차원에서 주권적 정당성을 갖는다. 중국은 이를 미국 서태평양 전략의 하나로 중국 견제와 감시 수단으로만 본다. 물론 미국은 국익 차원에서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전략 효과를 동시에 고려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미·중의 갈등 구조를 외면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을, 중국에 대해서는 ‘대화와 평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모호한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대응한다면 북한은 그 갈등과 의심의 틈새를 이용해 핵무기 진화의 공간을 확보할 것이다.

중·러가 제안한 ‘쌍잠정’에 유의해야 한다.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한시적으로 중단함으로써 중·러의 협력 속에 북핵 돌파구 마련을 위한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한·미 군사훈련의 잠정 중단이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우리의 전력 약화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러의 제안을 수용하는 한편, 이들에 대해서도 지적할 것은 해야 한다. 그동안 북핵 관련 도발-제재-협상-파기의 악순환이 일상이 됐다. 그 배경에는 북·중, 북·러 관계의 모호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중·러도 전략적 모호성을 거둘 때가 됐다. 북한의 ‘좋은 행위’에 대해서는 단계적 제재 해제와 원유 등의 물자 거래 허용을, ‘나쁜 행위’에 대해서는 송유관 등을 통한 원유 공급까지도 차단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북한에 보내야 한다.

‘쌍잠정’을 일고의 가치가 없는 중·러의 외교 수사(修辭)로 폄훼하면, 이들은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한반도 상황을 이용할 것이다. 미국 역시 북핵의 돌파구가 없는 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논리로 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우위 공고화를 도모할 것이다. 중·미의 대립각 속에서 북한이 직접 미국을 위협하면, 미국은 결국 자국 보호를 위한 ‘군사 조치’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대화 낙관론’으로 시간 낭비 말고, 미·중·러가 수용할 수 있는 과감한 구상으로 북핵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