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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라는 배우를 처음 인터뷰한 건 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마음이2’ 때였다. 구김 없던 신인 배우는 “마음이(개)가 주인공인데 인터뷰를 할 수 없어서 제가 해요”라며 “마음이 출연료가 저보다 높을 걸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후 송중기는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의 주인공 자격으로 인터뷰 석상에 다시 나왔다. 공전의 성공을 거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이후 첫 작품이자, 오는 10월 배우 송혜교와 결혼을 치른다고 발표한 터라 그에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시기다.

하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이 배우는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단단하게 현실에 발을 붙이려는 듯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몇 번을 곱씹어 의미 있게 답했다. 남자가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송중기는 이미 어른이 될 마음가짐을 갖춘 듯했다.
　
―‘군함도’에 대해 스스로 평을 해달라.
　“많이 긴장됐는데, 배우들끼리는 나름 만족하는 분위기예요. VIP 시사회 때는 바로 앞줄에 봉준호, 김지운, 최동훈 감독님들이 쭉 앉아 계셨는데 반응이 궁금했어요. 봉 감독님이 제일 많이 웃어주셨죠. 언론 시사회 때는 긴장해서 놓친 부분이 많았는데 두 번째 볼 때는 더 잘 보였어요. 개봉한 후에는 20번 넘게 더 볼 것 같아요.(웃음)
　
―‘태양의 후예’에 이어 또다시 군인 역할이라 고민했을 것 같다.
　”오래 고민하는 편은 아니에요. 마음에 들면 확 ‘이거다’ 하고 선택하죠. 출연 제안을 받으면 최대한 빨리 피드백을 드리려 해요. ‘태양의 후예’ 촬영 막바지에 ‘군함도’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또 군인 역할인가?’라는 고려는 전혀 없었죠.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어서 하루 만에 매니저를 통해 ‘하겠다’고 답을 줬어요.

―‘그 작품 왜 선택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웃으며) 작품마다 듣는 거 같아요. ‘늑대소년’ 때는 ‘대사도 없는데 왜 하냐?’였고 ‘메인이 아닌데 왜 하냐’ 등의 질문도 받았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캐릭터의 크기나 분량이 아니라 작품 자체라고 생각해요. 역할의 크기는 차이가 있겠지만 작더라도 제가 작품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되는 거죠.”

―군입대 전후로 송중기라는 배우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훨씬 성숙했고, 배려하는 자세가 많이 보인다.
　“제가 군대를 늦게 갔잖아요. 남자가 나이 먹고 군대 간다는 것이 나름 좋은 점이 있었어요. 둥글둥글해진 것 같아요. 손현주 선배님이 ‘일반 병과로 다녀오라’고 해주셨는데, 제가 연예인으로 살며 느끼지 못한 평범한 삶을 경험해 보라는 충고였어요. 그곳에서 전우들과 살 부대끼며 살며 연예인으로 살 때는 몰랐던 삶에도 눈을 뜨게 됐죠. 아직도 군대 선후배들과 연락을 하고 지내요.”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과 ‘군함도’의 박무영의 연기 톤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
　“결국 제가 그렇게 연기했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온다면 맞는 평가라 생각해요. ‘태양의 후예’ 때 과분한 사랑과 칭찬을 받았던 만큼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혼도 나야죠. 그래서 그런 평가가 절대 억울하지 않아요. 안 좋은 평가도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요. 그런 피드백을 받고 충분히 곱씹어야 제 다음 연기가 더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와 드라마를 두루 거치고 잇따라 성공작을 내며 송중기라는 배우는 어느 정도 완성돼 가는 것 같다.
　“절대 완성된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원톱’ 작품만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으로 에드워드 노튼을 굉장히 좋아해요. 혼자 능히 작품을 끌고 갈 수 있는 대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 조연 후보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같은 배우로 그를 바라볼 때 결국은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사극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린 이도’ 역을 맡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송중기가 맡을 배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뿌리깊은 나무’는 제가 배우로 살아가며 중요한 변곡점이 됐어요. ‘내가 할 사이즈의 역할, 하지 않아야 할 사이즈의 역할은 뭐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죠. 당시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저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었어요.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의 대본을 보고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배우가 역할의 크기를 떠나서 작품 안에서 제 기능을 하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개무량한지 깨닫는 순간이었죠.

―‘뿌리깊은 나무’에서 대선배인 한석규와 연기로 맞불을 놓는 장면이 있었던 것처럼, ‘군함도’에서는 이경영과의 연기대결이 볼 만하더라.
　”‘뿌리깊은 나무’의 장면은 되게 긴장했던 것만 기억에 남아요. 한석규 선배님의 리허설을 다 지켜보며 긴장의 연속이었죠. 선배님과 유일하게 붙는 장면이어서 더 어려웠어요. ‘군함도’에서도 덜덜 떨며 연기했는데, 다행히 이경영 선배님과 다른 장면을 촬영하며 몇 번 호흡을 맞춰봐서 좀 더 수월했어요. ‘군함도’를 통해 제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이 바로 이경영 선배님인 것 같아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룬 ‘군함도’를 촬영한 소감을 말해 달라.
　”사실 군함도라는 장소를 잘 몰랐어요. 촬영이 거듭될수록 그 아픔이 느껴져서 더 신중하게 연기할 수밖에 없었죠. ‘네가 앞으로 그릇이 커지고 큰 배우가 될수록 역사적 일이든 사회 활동을 신중히 하라’는 이경영 선배님의 조언이 큰 힘이 됐어요.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하는 기회였어요.“

―한류스타로서 이런 민감한 역사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걱정되진 않았나.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회사도 그랬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주저했다면 마음이 답답했을 것 같아요. 류승완 감독님이 없는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지어낸다면 부담이 되겠지만 이건 엄연한 역사와 진실을 알리는 행위잖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작품으로 이렇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되죠.“

―결혼을 앞두고 있다. 두 사람을 보면 참 잘 만난 것 같다.
　”(웃으며) 아마 제가 제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혜교 씨는 정말 생각이 멋진 사람이에요. 배울 점이 많죠. 제가 그녀를 더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부부로 살아가게 되는데 여전히 기대가 돼요. 혜교 씨가 전범 기업인 일본 미쓰비시 광고를 거절한 것을 보고 더욱 제 마음을 굳히게 됐죠. 연예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준 혜교 씨가 저에게 참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어요.“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아직 차기작은 결정하지 않았어요. 당분간은 결혼 준비 때문에 바쁠 것 같아요.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더군요. 일단은 결혼 준비 잘하는 것이 목표예요.“
　
#에필로그
　20대 신인인 송중기를 처음 봤을 때 참 당당하다고 느꼈다. 조금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자기 잘난 걸 스스로 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의 위상은 높아졌으나, 자세는 낮아졌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꼿꼿이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맥없이 꺾여버리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송중기의 고개는 꽤 자연스럽게 아래를 향했다. 상대를 높임으로써 자기가 더 올곧게 설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 듯했다. 그렇게 순리대로 나이 먹었기에, 그는 남들보다 조금 더 이른 나이에 가정을 꾸릴 결심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송중기는 복이 많은 배우라는 생각도 든다. 잘생긴 얼굴, 좋은 발성, 탄탄한 연기력, 준수한 학력 때문은 아니다. 그는 ‘인복(人福)’이 많다. 사람 좋고 인간미 넘치기로 유명한 차태현, 조인성을 든든한 형으로 뒀다. 큰 키만큼 심지도 깊은 친구 이광수도 곁에 있다. 송중기는 이를 내리사랑으로 실천해 후배 박보검을 끔찍이 챙긴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 그게 바로 ‘기운’이다. 그래서 송중기와 송혜교는 선남선녀의 만남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