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창문 건너편으로 공간을 기능별로 적절하게 분리하고 있는 중정이 보인다. 중정을 통해 옥상정원에 오르면 불암산의 거대한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김동훈 기자

서울 불암골 행복발전소

문화를 산업화해 지역경제를 살리고 싶은 지역의 절박함은 이해되지만 도시재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의 정주환경을 고려했을 때 마을의 관광지화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도시재생을 통해 유명해진 마을이 늘어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주거환경이 나빠지고 결국 살고 있던 주민들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민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좋은 이웃, 신선한 식재료가 있는 시장, 아이들을 키우는 데 적합한 환경 같은 일반적인 것인데, 도시재생사업은 종종 이러한 근본적인 요구를 살피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도시재생을 다루며 나타나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목표는 복합적인 인간의 삶을 반영하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

집을 짓기 위해 사무소를 찾아오는 젊은 부부들에게 왜 이 땅을 샀느냐고 질문하면 열에 아홉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돼 선택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인근에 공원, 유치원, 좋은 환경의 학교가 있는 곳을 일급 주거지로 생각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데, 유치원이나 방과 후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조건을 갖춘 공동체를 찾아 과감하게 이주하거나 동네 이웃들과 힘을 합쳐 공동육아를 하기도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불암골 행복발전소 내의 북카페.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공간이다. 김동훈 기자 dhk@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불암골 행복발전소는 맞벌이 부부나 사정상 종일 아이를 돌보기 힘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화·복지 복합시설이다.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북카페와 방과 후 아이들을 돌봐주는 지역아동센터가 결합된 공간으로, 모든 시설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이곳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학교가 끝난 후 아이들은 이곳에 모여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 숙제를 하거나 또래 친구들과 문화 활동을 하면서 부모님이 퇴근하는 시간까지 보낼 수 있다.

귀가가 늦는 부모를 대신해 저녁식사까지 제공하는 등 불암골 행복발전소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집과 같은 곳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낮 시간에는 비어 있는 공간을 활용해 동네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을 벌인다. 주민들은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단단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건물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북카페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데, 커피도 주민들이 직접 내려 마시고 커피값도 자율적으로 내고 있다.

불암골 행복발전소의 가장 큰 공간적인 특징은 중정과 옥상정원에 있다. 이 건물은 단층 건물로 규모가 비교적 작은데, 역설적으로 이 작은 공간의 중심에 중정을 두어 오히려 공간이 크게 느껴진다. 중정 너머로 중첩된 공간은 시각적으로 깊이를 주어 실제보다 더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공간을 기능별로 적절하게 분리하고 있는 중정을 통해 옥상정원에 오르면 불암산의 거대한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타할아버지의 둥근 배를 닮은 바위산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서 자연을 선물하고 있다. 옥상정원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붉은색 나무로 치장한 불암골 행복발전소가 붉은 벽돌의 다세대 주택들과 닮아 있다.

불암골 행복발전소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많은 사람이 꿈꾸는 좋은 동네는 예쁜 동네가 아니라 필요할 때 도와주는 이웃이 있고, 저녁을 먹고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으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이다.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도시재생이 화려한 목표보다는 보통사람들이 꿈꾸는 행복한 마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소박한 것일까.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