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과 재계가 손발을 맞춰 경제살리기 총력전에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인가, 권력은 훈시하고 재계는 적당히 비위를 맞추는 익숙한 광경이 되풀이될 것인가. 오는 27∼28일 문재인 대통령과 15개 기업 대표와 첫 대화(對話) 모임을 앞두고 나오는 두 기류다. 청와대는 “사람 중심 경제 등 새 정부 경제철학을 기업인과 공유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새로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이 기업인과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라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그간 문 정부가 몰아붙인 일련의 정책 내용이나 결정 과정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문 정부는 비정규직·원전·최저임금·법인세 등에서 기존 정책 기조를 뒤집으면서도 비용을 떠안을 기업 의견 수렴 과정은 철저히 생략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규직화 정책을 비판했다가 문 대통령으로부터 ‘성찰과 반성 먼저 하라’는 질책을 받았다. 대통령에게 현장 고충을 털어놔도 바뀔 것 같지 않다면 기업인은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가 말하는 ‘경제철학의 공유’는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 코드’에 맞추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청와대는 과거처럼 30대 그룹 총수를 한 번에 줄 세우는 식이 아니고, 심층 토론을 한다는 차별성에 나름 의미를 두는 듯하다. 하지만 사전 조율도 없었다고 한다. 상생협력 모범업체라는 중견기업 오뚜기를 굳이 포함한 것 자체만으로도 의도가 뚜렷이 읽힌다. 두 그룹으로 나눈 것을 두고도 정부와의 관계에 따른 편가르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의 성패가 국운을 좌우할 시기에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큰 그림을 함께 그린다면 국민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제시한 의제, 곧 일자리와 상생협력은 모두 참석 기업인에 협조·양보만 요구할 사안이다. 기업에 절실한 규제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기업인과의 첫 대좌가 ‘문재인 코드’ 압박용(用)으로 활용된다면 과거 정권의 기업인 줄세우기와 다른 게 뭐냐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