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부자증세’를 공식화하면서 증세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할 것”이라며 “기획재정부가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증세를 제안했으니 당·청이 손잡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문 정부가 ‘중복지’를 지향하는 데다 벌여놓은 정책 대부분이 혈세로 충당해야 하기에 증세는 피할 수 없는 궁여지책일지 모른다. 오죽하면 정권 부담을 우려해 금기시해온 문제를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론화하려 할까 하는 딱한 마음도 든다.

증세는 국가 경제의 주축인 기업과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다. 그러니 증세를 공론에 부치는 건 당연하다. 그 과정과 절차도 공정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문 정부의 이번 증세는 결론을 정해놓고 작전하듯 추진하는 졸속 결정이라는 의혹이 짙다. 정황은 차고도 넘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증세 없는 지출 확대’를 발표했던 바로 그 다음날 여당 주도 증세론이 본격화한 점부터 석연치 않다. 주무 장관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증세방침이 확정된 회의에서 4시간 30분간 내내 침묵하고 있었다는 대목에선 기가 찰 지경이다. “증세는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 그로서는 졸지에 ‘국민 바보’가 된 셈이니 모멸감까지 느꼈을 터다.

기재부는 8월 2일쯤 ‘세제개편안(案)’을 내놓을 방침이었다. 당초 여기엔 증세 안이 아예 제외돼 있었다는 전언이다. 그런데 당·청이 갑자기 ‘증세’를 못 박으면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만약 예정된 날짜에 세법개정안이 발표되면 10여 일 만에 급조(急造)된 ‘증세확정안’이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시기도, 논리도, 절차도 온당치 않은 증세를 국민이 납득하겠나. 납세 당사자는 물론 다른 국민에게 양해와 동의도 구하지 않는 세금은 ‘가렴주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