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내면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마음챙김으로 확인하고 돌보는 훈련이 화를 잠재울 수 있는 명상법이다. 전남 구례의 아담하고 정갈한 한옥 쌍산재. 박경일 기자 parking@

(10) 명상과 화 Ⅱ

지난 회에서 우리는 ‘화(火·anger)’와 분노 같은 단단한 감정들은 대개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이나 외로움, 상실감 등 연약하고 부드러운 느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겨난 딱딱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화’의 독성을 해독하는 첫 번째 방법으로 명상을 통해서 ‘화’의 감정 이면에 있는 부드러운 느낌을 우리 몸에서 발견하는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이 실습은 커플치료로 유명한 임상심리학자인, 크리스틴슨과 제이컵슨(Christenson & Jacobson, 2000)의 연구(대개 화는 보다 연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보호하고 있다)를 MSC(Mindful Self-Compassion) 프로그램의 명상기법에 도입한 것입니다.

# 부드러운 느낌에 이름 붙이기

‘화’의 독성을 해독하는 두 번째 방법은 화의 이면에 있는 부드러운 느낌에 따뜻하고 이해하는 목소리로 이름을 붙이는 작업입니다. 명상실습을 위해서 먼저 지난 회에 실린 ‘명상과 화 I’의 내용을 처음부터 잘 읽어보시고 실제로 따라서 하신 다음에 이어서 하시면 한결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제 딱딱한 화의 감정 덩어리를 벗겨버리고 그 밑바닥에 어떠한 감정이 숨어 있는지 들여다봅니다. 그 속에 아픔이 있는지, 두려움이 있는지, 아니면 외로움이나 슬픔이 있는지 확인해 봅니다. 화의 이면에 있는 부드러운 느낌들을 발견했으면 그 느낌에 아픔, 놀램, 두려움 등의 이름을 붙여보세요.

지난 회에 소개했던 여성분을 예로 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가 났던 일을 떠올리고 그 화난 감정을 몸을 통해서 느껴보려고 했을 때 가슴에서 가장 강한 반응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슴도 당연히 화가 났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가슴은 의외로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 경우 화의 감정 이면에 있는 부드러운 느낌은 ‘놀램’ 또는 ‘두려움’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 충족되지 않은 욕구 확인하기

화의 독성을 해독하는 세 번째 방법은 앞에서 발견한 그러한 부드러운 느낌들 이면에 있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들, 이를테면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알려지고, 보여지고, 인정받고, 연결되고, 보다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명상 실습을 통해서 부드러운 느낌들 이면에 있는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명상으로 들어가서 심호흡을 2~3번 해봅니다. 그런 다음 과거의 사건이나 상처와 관련된 사람들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여러분 자신의 경험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봅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충족되지 않는 욕구는 무엇인가? 내가 정말로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인가?”

인정받고 싶었는가? 특별해지고 싶었는가? 연결감을 느끼고 싶었는가? 사랑받고 싶었는가?

# 연민으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 채워주기

이제 화의 독성을 해독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사랑을 줍니다. 상대가 우리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알고 보면 그 상대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는 연약한 존재이므로 우리를 돌봐줄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직접 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면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고, 혼자라고 느끼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줄게”라고 말해줍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내가 널 보고 있어”라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해줍니다. 만일 그러한 표현이 어색하고 잘 안 되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친구가 여러분과 똑같은 상황에 있다고 상상하고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해 준 말들을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들려줍니다.

우리는 흔히 화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맞서서 저항하고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주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화를 더 키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최근 심장 관련 연구에 의하면 감정을 억압하는 것도 건강에 해롭지만 감정을 폭발하는 것은 더욱 해롭다고 합니다.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에 보면 비회비출(非懷非出·마음에 품지도 말고 밖으로 내뿜지도 말라)이라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이 가르침을 화의 감정에 적용하면 ‘화를 안으로 간직하지도 말고 밖으로 표출하지도 말라’는 의미가 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자각, 즉 마음챙김(mindfulness)을 하면 가능해집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화의 감정을 다루는 4가지 단계는 바로 이러한 화에 대한 마음챙김을 좀 더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돌보는 방식입니다.

비폭력대화의 저자로 유명한 마셜 로젠버그가 “화는 충족되지 않는 욕구의 비극적 표현”이라고 말했듯이 우리들이 겪는 대부분의 화, 특히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일어나는 미움이나 분노의 감정 이면에는 좌절된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내면에 가장 깊이 잠재된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의 욕구입니다. 인정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날마다 매 순간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바람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내면의 잠재된 사랑의 욕구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똑같은 사랑의 욕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삶과 인간관계에서 더 많이 포용하고 사랑하게 되고 더 적게 두려워하고 혼자라는 느낌을 덜 갖게 될 것입니다.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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