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고치시의 히로메 시장은 싱싱한 생선회와 튀김, 다다키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와 식자재를 판다.

느릿한 일상·때묻지 않은 자연 日 시코쿠

여행의 또 다른 의미는 ‘쉼’이다. 시코쿠(四國)의 일상은 휴식처럼 느리다. 일본 열도를 이루는 4개의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시코쿠의 매력은 휘황찬란한 쇼핑 플레이스 대신 천천히 흐르는 시간과 때 묻지 않은 자연 풍경에 있다. 제대로 한숨 돌리기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시코쿠는 틀림없이 매력적인 곳이다. 시코쿠, 화려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그곳.

인천공항에서 1시간 30분을 날아가 도착한 첫 여행지는 가가와(香川)현의 현청 소재지인 다카마쓰(高松)의 리쓰린(栗林)공원. 시코쿠의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다. 밤나무숲이라는 의미의 리쓰린 공원은 1600년대 중엽 에도(江戶)시대 초기에 당시 사누키(讚岐·가가와의 옛 이름)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의 별장으로 만들어졌다. 잘 깎은 정원수가 일품인데 기기묘묘하게 다듬어진 분재송들이 독특하다. 특히 6개의 연못과 13개의 언덕이 조화를 이룬 정원은 일본 국가 특별 명승지 중 최대 규모라는 말을 가늠케 한다.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다실(茶室)에 앉아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 여인이 대접하는 말차를 마시면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참고로 이곳은 세계적인 여행 정보 안내서인 ‘미슐랭 그린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았다. 미슐랭 가이드 별 3개는 ‘일부러 찾아갈 가치가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매력은 자연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게 이곳은 ‘우동의 도시’로 유명하다. 일본 3대 우동인 ‘사누키 우동’이 바로 가가와현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사누키 우동의 핵심은 면발이다. 국물보다는 면발에 집중해야 한다. 사누키 우동의 쫄깃하고 탱탱한 식감은 허기진 여행자의 젓가락질을 바쁘게 한다. 젓가락이 휘청댈 만큼 묵직한 국수 가락 하나를 집어 들고 후루룩 빨아들이면 국수 가락이 입술을 스치며 탄력 있게 훅 빨려 들어간다. 국물은 대개 간간하고 맑은 편이다. 우동으로 이름난 곳이다 보니 이 자그마한 도시에 우동 가게가 800곳이 넘는단다. 심지어 이 지방 대학에서는 이른바 ‘우동학’ 수업을 열어 우동의 역사를 가르치는가 하면 시 차원에서 다카마쓰 우동버스 투어를 운영하는 등 사누키 우동의 맛을 즐기기 위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다카마쓰가 있는 가가와현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도쿠시마(德島)현으로 가는 길목에는 또 다른 절경이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바로 오나루토(大鳴門)대교. 나루토 해협은 간만의 차가 큰 데다, 조수가 시속 15~20㎞에 달해 빠르게 요동친다. 이처럼 거센 물길이 뒤섞이다 보니 소용돌이가 생기는데 이 소용돌이가 가히 압권이다. 큰 조수일 때는 직경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기기도 해 세계 3대 소용돌이 중 하나로 꼽힌단다. 소용돌이는 유람선을 타고 바로 옆에서 보거나, 전망대에 올라 오나루토 대교와 함께 볼 수도 있다. 가장 이색적인 체험은 오나루토 대교 위에 조성된 ‘우즈노미치(渦の道)’를 통해 보는 것.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통로로 만들어진 우즈노미치에서는 발아래에 설치된 투명한 유리 바닥을 통해 요동치는 아찔한 소용돌이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100년에 걸쳐 완성된 다카마쓰시의 에도시대 정원 리쓰린 공원. 일본 정원 문화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손 안에 1000원이 주어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가가와현 사람들은 1000원을 저금합니다. 에히메(愛媛)현 사람들은 1000원을 몽땅 다 써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치(高知)현 사람들은 1000원을 더 보태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가이드의 재치 있는 설명에 버스 안 관광객들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시코쿠에는 가가와 말고도 3개의 현이 더 있다. 술을 사랑하는 고치현 사람들은 다혈질이다. 고치는 일본 막부 체제를 종식하고 근대화를 이끈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어릴 때 무서워했던 맹견 도사견의 원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호탕하고 역동적인 고치의 풍모는 특히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고치시 히로메(ひろめ)시장은 실내에 60여 개 식당과 점포가 모인 명소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오후 11시까지 문을 연다. 낮에도 사람들은 초밥 가게, 튀김 가게, 정육점 등 다양한 가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고른 뒤 중간에 차려진 테이블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음식을 나눈다. 그렇다 보니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흥겹게 들려온다. 또 현지인들이 대부분이라 이들 틈에 섞여 물건을 구경하며 음식과 술까지 즐기다 보면 이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기분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가다랑어를 볏짚에 살짝 구워 겉은 익고 속은 생살인 채 먹는 ‘가다랑어(다다키) 요리’가 인기 있다. 여기에 파나 마늘을 듬뿍 얹고 간장을 살짝 찍어 먹는다. 술 문화가 발달한 만큼 다양하고 이색적인 술 기념품도 판다. 잔을 다 비우지 않고 내려놓으면 술이 새서 바닥을 적시는 술잔이 대표적.

아직 남들이 몰라서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여유. 남모르는 재미를 발견하는 쏠쏠함. 일본의 4개 주요 섬 가운데 가장 작다는 시코쿠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일 테다.

김수민 기자 human8@
취재 협조 = 일본정부관광국(JNTO)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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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마쓰 가는 길 = 인천공항에서 다카마쓰공항으로 주 3회 운항하던 아시아나항공은 10월부터 에어서울로 노선이 이관된다. 운항횟수도 주 5회로 늘어난다.

볼거리 = 오쓰카(大塚) 국제미술관은 ‘세계 최초의 도판 명화 미술관’이다. 세계 25개국 190여 개 미술관이 소장한 명화 1000여 점을 원본과 똑같은 크기로 재현해놨다.

묵을 곳 = 빌라 산토리니는 그리스 산토리니섬에 가보고는 싶지만, 시간과 돈이 부담스러워 포기한 이들에게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다. 리조트형 호텔인 빌라 산토리니는 산토리니섬의 외관은 물론 건축 구조까지 그대로 본떠 그리스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본 현지에서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 방해받지 않고 조용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긴 비행시간이 부담스러운 예비부부 관광객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