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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경제학

한국은행은 2016년 이후 5년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8∼2.9%로 추정된다고 최근 밝혔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경제가 가용 기술과 자본 및 노동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했을 때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률을 말한다. 부(富)가 아닌 생산의 증가를 측정하고 정확한 추정치를 얻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 5% 안팎이던 잠재성장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성장 역량에 문제가 생겼음을 뜻한다.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기술 수준, 자본과 노동의 양, 법과 제도, 기후 등 경제학자들도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많다. 이는 곧 어느 한 측면에 특화된 인위적인 정책으로 성장을 견인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말한다.

경제성장도 일자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가치와 무관할 수 없다. 경제성장은 단순한 산출 증가가 아니라 부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란 사람들의 주관적 가치를 반영하므로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 체계를 잘 알고 만족하게 해줘야 돈을 벌 수 있는 기업가들이 성장을 가장 잘 견인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태생적으로 그런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의 ‘이윤과 손실’이라는 상벌 체계가 이들로 하여금 그런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그런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기업가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기업가들을 내버려 둔다는 것은, 회삿돈을 횡령하는 등의 범죄 행위가 아닌 한 그들의 기업 활동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압박,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최저임금제 등은 모두 기업가들의 활동을 억압하는 규제들이다. 대외적인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잠재성장률이 뚝 떨어지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특히,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규제는 당장 폐지해야 한다. 자본 축적은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자본재에는 시간이 저장돼 있다. 땅을 파는 삽과 굴착기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축적된 자본재의 양이 많을수록 단시간에 사람들이 원하는 많은 양의 재화를 공급할 수 있으므로 풍요로운 물질적 생활이 가능해진다. 경제성장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한다.

산꼭대기에 올라 보면 발 아래 산의 형세와 물의 흐름을 환히 내려다볼 수 있다. 산꼭대기에 올라 보지도 않고, 전반적인 형세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저 아래 계곡에서 물줄기를 자의적으로 이리저리 돌려 봐야 치수(治水)만 그르칠 뿐이다.

복잡한 인간 세상사는 이보다 이해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경제 질서는 복잡다단해 우리가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경제가 힘차게 돌아가게 하려면 사람들의 가치 체계를 잘 알 수 없는 정부가 함부로 개입하지 말고 기업가들을 비롯한 경제 주체들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경제 질서 아래서 노동 분업에 의한 협동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경제성장이 촉진된다.

잠재성장률이 뚝 떨어졌다는 것은, 세계적인 불황을 고려하더라도 경제성장을 선도하는 기업가들의 활동이 위축돼 있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