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信서 탈출하는 마법의 주문 ‘상상하라, 서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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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 치유 / 아모스 오즈 지음, 노만수 옮김 ／ 세종서적

“모든 일상에서 서로를 상상하라.”

히브리 문학의 거장이자 평화운동가인 아모스 오즈가 제안하는 ‘광신주의’에 대한 해독제이다. 자기만 옳다는 신념, 머릿속으로 오직 ‘하나’만 생각하는 타협을 모르는 주장,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이 가능하다는 위험한 생각, 그래서 문제를 풀지 못할 뿐 아니라 모두를 비극에 이르게 하는 ‘광신주의’. 이에 대한 ‘상상하라. 서로를’, 오즈는 다분히 문학적인 이 구호가 가장 현실적인 길이라고 한다. ‘광신자 치유’(How to Cure a Fanatic)는 오즈가 2002년 독일에서 했던 두 번의 강연을 엮은 것이다. 구체적인 주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과 평화에 이르는 해법. 그는 책에서 공정한 이혼을 주장한다. 땅을 인구 통계에 따라 대략적으로 분할, 두 국가를 만들자는 ‘두 국가 해법’이다. 양측 모두 좁고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가는 지옥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강연 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해묵은 분쟁은 손톱만큼도 나아지지 않고 테러와 이슬람국가 등장으로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상황이 이러니 책의 호소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책이 우리 독자의 머리와 마음을 자극하는 것은 광신주의에 대한 그의 예리하고 섬세한 분석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에는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양측의 광신주의자들이 자리한다며 펼쳐 놓는 호소력 깊은 분석은 우리의 일상부터 글로벌 이슈에 이르기까지 현명하게 적용된다.

“광신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늘 있는 나쁜 유전자”이다. 오즈는 종교, 국가, 정부보다 더 오래된 기원을 가진 광신주의의 씨앗은 타협하지 않는 정당성에 기생하고, 그 본질은 타인을 억지로라도 변화시키겠다는 욕구에 있다고 했다. 이웃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고 싶다거나, 사람들의 행실을 고쳐주고 싶다는, 예컨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 자기희생까지도 감내하겠다는 것에서 광신주의가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광신자는 아이러니하게 가장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며, 위대한 이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잘못된 이타주의이다.

이 틀을 적용하면 오사마 빈 라덴이 서구를 미워했다는 분석은 너무 단순해진다. 이들 광신주의자는 자신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고, 물질주의로부터 다원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부터 여성해방으로부터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9·11은 사랑의 행위였던 셈이다. 따라서 오즈는 9·11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 부와 빈곤의 충돌로 보지 않는다. 새뮤얼 헌팅턴 식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주장도 틀렸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벌이는 싸움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을 써도 좋다고 믿는 광신자들과 생명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나머지 사람들이 벌이는 싸움이라는 틀로 봐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전체주의 정권, 치명적인 이데올로기, 쇼비니즘, 폭력에 호소하는 종교 근본주의의 광신자들을 지켜봐 왔다. 오즈는 이들뿐 아니라 유명 스타에 대한 열광, 정치 혹은 종교 지도자에 대한 이상화도 광신주의로 꼽았다. 그러니 광신주의는 모든 곳에 편재한다. 광신주의가 가정에서 싹튼다는 분석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아이를, 배우자를 변화시키겠다는 충동이 위험한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열망은 폭력이 되기 쉽다. 누군가의 희생은 혜택을 받는 사람에겐 무거운 죄의식이 되고, 결국 그것에 교묘하게 조종받고 심지어 지배받는 상황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삶의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광신주의에 우리는 무엇으로 대항해야 할까. 오즈는 세 가지 해독제를 이렇게 꼽는다. 문학, 유머, 상상력. 이들은 셋이면서 하나로 결국 자신을, 상대를 끊임없이 상상하라는 메시지이다.

먼저 유머. 오즈는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 광신자로 돌변한 경우를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광신자들은 대부분 빈정거리는 냉소주의자들이다. 유머의 힘은 스스로를 비웃는 능력이라고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인생은 어떤 측면에서 조금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는 걸 아는 능력이 유머이다. 자신이 옳으면 옳을수록 스스로를 익살맞게 볼 수 있게 하는 힘. 결국 열린 자세로 다양성을 즐기는 능력이다. 이런 개방성을 갖고 모든 일상적인 차원에서 서로를 상상하라고 한다. 말다툼할 때, 불평할 때, 특히 자신이 100% 옳다고 생각할 때 서로를 상상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상상력 주입에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오즈는 광신주의 해독제로 셰익스피어, 카프카와 고골을 꼽았다. 그가 밝힌 해독제의 효능은 이렇다. “셰익스피어는 전적으로 도움이 된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모든 광신주의는 최종적으로 비극이나 희극으로 끝난다. 광신자는 극의 마지막에 죽거나 웃음거리가 된다. 그렇기에 좋은 백신이다. 니콜라이 고골도 도움이 된다. 고골은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제대로 모르고 있는지를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깨닫게 한다. 프란츠 카프카 작품도 좋은 선생이다. 우리가 특별히 아무런 잘못을 저지른 기억이 없다 해도 우리 내부에 어둠, 수수께끼와 조롱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은 나와 함께 하는 상대로 인해 완성됨을, 우리 모두의 삶은 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즈가 인용한 예후다 아미차이의 시 한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곳에는 꽃들이 피지 않아요(Where we are right no flowers can grow)”.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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