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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대 한양대 교수 행정학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스스로 천명한 ‘5대 원칙’도 저버린 인사권 행사에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3종 세트’ 지적까지 받은 후보마저 장관에 임명하면서 정부의 인사 원칙 확립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드세게 일고 있다.

대선 때 후보자마다 인사 부적격(不適格) 사항으로 위장전입, 논문 표절, 음주운전, 부동산 투기, 병역 비리 등을 거론하기도 했으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인사 5대 원칙’을 대(對)국민 약속으로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문 정부의 탄생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인사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17명의 인사청문회 대상자에 대한 면면과 이들로 제기되는 이슈들을 살펴보니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이 오히려 이전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더 파렴치하고, 비도덕적·비윤리적이며, 저질과 함량 미달, 부적격자, 탈법적인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그렇게도 강조하던 ‘인사 5대 원칙’을 스스로 쓰레기통에 내팽개치듯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의 ‘기대’가 ‘역시나’로 바뀔 우려가 커지고 있음에 국민의 맘이 편치 않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도덕성·공정성·청렴성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한동안 시민단체를 대표하면서 인사 5대 원칙에 가장 비분강개(悲憤慷慨)하며 비판적이던 인사가 정작 본인이 인사청문 대상자가 되면, 그 누구보다도 심각한 흠결이 드러나기도 했고, 이전 정부에서는 훨씬 경미한 논문표절 관련 후보자도 낙마했는데 이번에는 한층 더 심각한 표절도, 음주운전도, 비리 관련자도 막무가내로 인사청문회를 통과시켜 달라고 한다. 직전 박 정부가 ‘수첩인사’로 명운을 다했듯이 문 정부도 울타리에 갇힌 ‘진영(陣營)인사’나 ‘손바닥인사’라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럼 이 같은 현상을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이를테면 위장전입의 경우에도 직업군인들의 직업상의 특성으로 인한 위장전입, 자녀교육 문제, 부동산 투기, 정부의 지원금 불법 편취 등 각양각색이다. 또한, 대학교수나 박사들의 논문 표절 문제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본인의 글을 자기가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논문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던 시절의 일을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기에는 문제가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인사 원칙을 공론화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준과 잣대를 마련해야 한다. 즉, 유형이나 사안에 따라 경중을 달리할 것인지, 시기나 기간에 따른 기준이나 원칙을 둘 것인지, 또는 대상을 본인에 한정할 것인지, 배우자와 자녀들뿐만 아니라 직계존속까지도 포함할지 여부 등 그 범위와 기준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러한 합의를 통해 기준이 마련되면 국민에게 공표하고 이후로는 어느 정부라도 합의된 원칙이나 기준에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부 출범 초기에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튼튼하던 제방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대홍수 때문만이 아니다. 붕괴의 시작은 조그만 두더지 구멍일 수 있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행여 이것이 제방을 무너뜨리는 두더지 구멍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스스로 설정하고 국민에게 약속한 인사 5원칙을 또다시 저버리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면 곤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