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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사 마애석가여래좌상

한반도 최초의 마애불은 온화한 미소로 유명한 국보 84호 서산마애삼존불(6세기 말∼7세기 초·백제·충남 서산시)이다. 고려 시대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마애불은 돌을 떼어 내 불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벽에 불상을 새긴 것이다. 북한산 기슭에 자리한 승가사 뒤편의 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215호·사진)도 그 같은 고려 시대 마애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승가사는 조선이 건국될 무렵 무학대사에 의해 한양 도성의 북쪽을 지키는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지정된 사찰로 유명하지만, 사실 승가사는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지기 훨씬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유서 깊은 비구니 사찰이다.

승가사는 신라 경덕왕 15년(756년)에 창건한 절이다. 승가굴이라는 자연석굴이 있는데 그 속에 있는 인도의 승려 승가대사좌상은 고려 현종 때 제작한 것으로 보물 1000호이며, 승가굴 앞 약수에 있는 ‘영천(靈泉)’이란 글씨는 추사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마애불만 해도 고려 초기에 조성됐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일각에서는 더 오래전인 신라 시대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불상은 승가사 위쪽 100m 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화강암 벽에 석가여래의 앉은 모습을 새겨 넣은 것이다. 불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뙤약볕을 받으며 사찰 대웅전 뒤편으로 난 108계단을 올라야 한다.

불상의 높이는 약 5m로 상당히 크며 조각 솜씨 또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얼굴은 네모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게 처리됐으며, 오뚝하게 솟은 콧날과 꾹 다문 입, 가늘게 뜬 눈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불상 머리 위에는 팔각형의 뚜껑돌이 얹혀 있는데 불상의 머리에 직접 얹지 않고 별도의 돌에 새겨 바위벽에 끼워 놓은 것이 특이하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시대 마애불상보다 다소 둔화되고 형식화된 감이 있다. 그러나 신체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으며, 얼굴 표정 또한 부드러움과 자비로움이 잘 간직돼 있어 고려 시대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제작 연대는 고려 초기인 10세기쯤으로 추정된다. 고려가 건국된 뒤 지방 토착세력들이 왕건이 자신들을 무시할 것을 우려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석불이라는 주장도 전한다.

안타깝게도 이 ‘북한산 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지난 1968년 무장간첩 침투사건 때 온몸에 총상을 입고 대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당당한 체구에 온화한 표정이 여전한 것으로 보아 불심의 힘이 결코 작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다.

승가사는 북한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마애불에 가기 위해서는 구기탐방지원센터에서 계곡길을 따라 1시간여 숲속 소로로 등산을 해야 한다.

글·사진=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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