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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前 외교부 차관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기실 정상회담이란 ‘성공’을 위해 기획된 고도의 정치 행위다. 양측이 협의해 미리 의제를 정하고, 합의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합의하기로 각본을 짜기 때문이다. 물론 회담에 임하는 정상들의 스타일에 따라 예측 불가의 상황이 생기기도 하나, 이를 국내외적으로 감수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지 않은 한 ‘돌출행동’을 하긴 힘들다.

지난달 29~30일 열린 정상회담 결과로 볼 때 양측이 합의한 의제는 한·미 동맹, 북한 핵 문제, 통상(通商) 관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北核) 문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통상 관계에 최우선순위를 뒀던 것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다. 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대화와 제재를 통한 해결’에 합의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한 것은 문 대통령의 성과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공동 언론 발표문에서 강조한 북핵 문제의 ‘단계적·포괄적 접근’이 막상 공동성명에서 빠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공동 언론 발표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언급했지만, 공동성명에는 그 내용이 빠져 문 대통령과 비슷한 이유로 아쉬웠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정상회담은 대체로 무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상회담은 큰 틀에서 전략적 공감대를 구축하는 자리이므로, 향후 전술적 협의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이견(異見)까지 미리 해소할 수는 없다. 우리는 특히 북핵 문제에 관해 문 대통령의 공동 언론 발표문과 양국 공동성명 사이의 ‘괴리’에 관해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양국 정상이 회담 과정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에 공감대를 형성했을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동결에서 비핵화로 이어지는 단계적 접근이 남북관계 개선과 잘못 어우러질 때 나타나게 될 후폭풍을 우려했을 수 있다. 워싱턴의 공화당 계열 전문가들은 북핵을 동결시키는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대북 제재 해제나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성급하게 추진될 가능성을 걱정한다.

우리는 과거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2007년 2·13 합의를 통해 북핵 동결에 합의했지만, 검증 문제를 제대로 관철하지 못해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 전력이 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문 정부가 ‘일단 북핵 동결을 해놓고, 비핵화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동결-비핵화 2단계 접근법’이 비핵화를 장기적 과제로 미루는 게 아니며, ‘검증 가능한 동결(verifiable freeze)’을 통해 핵·미사일 고도화 속도를 늦추고 북한의 속임수를 철저히 차단한 가운데 남북관계를 개선할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중 삼각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이나 은행을 제재하는 ‘제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에 착수하고 있다. 미국이 점차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한·미·일 중심으로 대북 압박에 집중할 경우 한·미·중 관계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사드 문제가 이번 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가는 노력이 중국에 더는 위안이 되지 않을 것이다. 조속히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길만이 사드를 한반도에서 철수시킬 수 있고, 한·중 관계와 동북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에 명확히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