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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국민의당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지난 대선에서 당원인 이유미 씨가 ‘문재인 후보 아들이 고용정보원 입사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허위 사실을 조작해 유포한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이 씨의 단독 범행인지, 윗선 개입이 있었는지, 안철수 전 대표가 ‘조작’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안 전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만약 안 전 대표가 이 사건에 휘말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다는 유혹에 빠져 사건 진상이 모두 규명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면 정도(正道)가 아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안 전 대표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대한민국 대선에서 공작정치의 추악한 민낯이 종종 드러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97년 대선에서 발생한 북풍(北風)이다.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가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대선판에 북한을 끌어들이려고 시도했던 사건이다. 이런 음습한 공작정치 속에서도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재미교포 사업가 윤홍준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1년6개월 간 옥살이를 했다. 이 밖에도 역대 대선에선 병풍(2002년), BBK 주가 조작 사건(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북방한계선(NNL) 포기 발언(2012년) 등 각종 크고 작은 의혹들이 불거졌다.

그렇다면 왜 대선 때마다 도를 넘는 의혹 제기와 공작정치가 되풀이되는 것일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불벌(不罰)을 동원한 한 방으로 ‘이기면 된다’는 비뚤어진 한탕주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권자들은 제한된 정보를 갖고 확신에 차서 행동한다. 따라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탈진실(post-truth)’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경우 왜곡된 정보를 통해 대중의 감정적 반응을 자극하는 것이 사실보다 영향력이 커진다.

하지만 공작정치에 의한 가짜 뉴스는 유권자의 잘못된 선택을 유도하고 선거 결과를 왜곡시킬 위험성이 크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더 이상 공작정치와 가짜 뉴스가 선거판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법을 개정해 사실 조작과 같은 공작정치의 경우, 단순한 허위사실 유포죄보다는 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민주주의 파괴 범죄(犯罪)’로 간주해 가중처벌해야 한다. 또한, 정당이 공작정치에 개입된 사실이 밝혀지면 선거에서 그 정당에 지급한 국고보조금을 모두 회수하고, 분기별로 지급하는 정당 국고보조금도 일정 기간 중단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스스로 당을 해체하는 수순을 밟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대통령 당선인도 금품 수수 및 조직적인 공작 선거운동에 가담한 사실이 적발되면 당선 무효가 가능토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은 ‘특혜 채용 의혹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 2일 안 전 대표를 대면 조사했고, “윗선 개입에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상 ‘면피용’ 조사라는 평가가 있다. 이 씨 변호인이 ‘개인 일탈’ ‘단독 범행’ 주장을 정면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제 식구 감싸기는 당을 죽이고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국민의당이 자체 조사에 자신이 있다면 주저 말고 특검을 요구해 스스로 검증받아야 한다. 사즉생(死則生)의 각오가 없다면 국민의당은 국민에 의해 해체당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