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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장사 1년 먹여살린다’ 옛말
동화·애니 융복합 작품들 속속

“어휴, 할머니! 덥지도 않은데 왜 자꾸 벗어, 창피하게.”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보며 투정을 부리는 어린 손녀는 높은 음역대의 소금(小금) 소리가, 집안의 큰 어른이어야 하지만 천덕꾸러기가 돼 버린 할머니는 애잔한 아쟁(牙箏) 소리가 표현해낸다. 성격이 다른 두 악기의 음색이 극 전반을 이끌어 가면서 무대 뒤 화면에 펼쳐지는 각종 그림과 어우러져 하나의 동화적 세계를 완성해낸다. 치매 노인과 손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이혜란의 동화 ‘우리 가족입니다’가 국악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지난 21일 연주회(사진)를 통해 선보인 이 독특한 시도는 기획 단계부터 세 편의 그림책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국악 기반의 곡들로 꾸려가 가족 단위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11세, 8세 두 자녀와 함께 연주회를 찾은 학부모 이다해 씨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 의미가 있으면서 부모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찾다 보니 오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 여름 시장의 비중이 커지면서 ‘겨울 장사가 1년 먹여 살린다’는 명제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특히 여름 시장을 물들이는 공연의 성공 키워드는 ‘가족 관객’이라는 것이 공연 관계자들의 얘기다. 대중적 요소가 큰 뮤지컬은 물론 성인 관객층이 대부분이던 국악, 클래식도 더운 여름 ‘공연 바캉스’를 즐기는 가족 단위 관객들을 위해 맞춤형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문화예술공연의 주 향유층인 20~30대의 티켓파워가 절대적이었다면 점차 공연 관람이 하나의 문화생활로 자리 잡고 관객층이 가족 단위로 확대되면서 이들을 위한 여름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차용한 융·복합형 공연들이 여름에 잇달아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11월부터 1월까지의 겨울이 전통적으로 공연계 최고 대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내에 공연문화가 안착되면서 여름 시장이 점차 커졌고, 이 시즌에는 심각한 내용보다 남녀노소 다 같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예술의전당에서 내달 9일 열리는 공연도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융·복합했다. 한국 포크록의 거장 한대수의 해설과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코리안심포니의 연주, 애니메이션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진다. ‘할리우드의 피터와 늑대’라는 이름의 이 공연은 프로코피예프가 1936년에 쓴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이번이 아시아 초연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동물원에서 늑대 피터가 탈출했다는 설정 아래 동화적 세계가 클래식 음악을 만나 다채롭게 전개된다.

7월 2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앙상블 디토의 10주년 기념 공연에는 ‘패밀리 클래식’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공연에서는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등 클래식 음악이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7월 11일부터 9월 1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여름 시장의 강자 뮤지컬 ‘캣츠’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