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국가의 공식 입장으로 인식되는 것은 물론, 행정부에는 최고의 지침으로 작용해 다양한 정책 검토를 봉쇄하고, 혹시 예기치 못한 문제점이 발생하면 더 고위 레벨에서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의 입장이 천명될 때는 사전 준비와 사후 대책이 어느 정도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 축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추진 입장을 밝힌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남북 대화를 재개해 북핵 폐기를 설득해보겠다는 진정성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남북관계사(史)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선의만으로 문제가 풀릴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북한의 6·25 남침 67주년 하루 전이었다. 한·미 정상회담도 목전에 두고 있다. 무엇보다 현 상황은 대북(對北) 제재 국면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제재보다 대화’라는 입장에서 대화를 구걸하는 것으로도 비친다. 지금까지의 도발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해 준 혈맹(血盟)인 미국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입장과 상관없이 내 갈 길 가겠다는 신호로도 읽힐 것이다. 박왕자 씨 피살 사건을 연상시키는 오토 웜비어 사망 후 미국에선 대북 응징론이 뜨겁다. 지금 문 대통령이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할 일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안보를 지키기 위한 동맹 강화임을 잊어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선 형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남북 단일팀 구성을 추진할 경우에 예상되는 여러 문제점을 고려하면 주무 부처 장관이나 다른 실무급 차원에서 타진하는 게 낫다. 문 대통령 언급의 문제점에 대해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조목조목 반박한 것도 듣기 민망하다.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사실관계나 순수한 스포츠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과거 단일팀 구성 등의 시기와 북한이 핵실험을 다섯 차례나 진행한 현 국면과 전혀 다르다. 또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딴 북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는 등 수준차가 너무 커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 자체부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