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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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택시업계의 친절이 문제가 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택시요금엔 친절과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 지난 6일 88세로 작고한 재일동포 유봉식(일본명 아오키 사다오·靑木定雄) MK택시 창업자가 한 말이다. 그의 ‘운전기사 친절수칙(守則)’은 아직도 전설이다. ‘운전기사가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늦은 밤 여성고객이 내리면 걸어가는 골목길을 전조등으로 비춘다. 하차 때 소나기가 쏟아지면 공짜로 우산을 내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5년 MK택시를 ‘세계 최고의 서비스기업’으로 선정했다. 민간항공사도 아닌 한 나라의 택시회사가 이런 자리에 오른 건 파격이자 이변이다.

고인은 ‘MK기사’들이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복지에도 적잖은 투자를 했다. 연봉과 대우를 높여주기 위해 ‘수익 극대화·이익 적정배분’ 원칙을 반드시 지키려 했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기사들에게 사택도 마련해주었다. 특히 기사 제복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는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70만 원짜리 고급 유니폼을 기사들에게 제공했다. ‘운전 기사의 제복은 명예와 그에 따른 책임의 상징’이라는 그의 소신의 소산(所産)이었다.

우리나라 택시업계에도 MK발(發) 친절 바람이 분 적이 있다. 1990년대 초반 고인의 성공신화가 국내에 TV 드라마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택시회사에서 ‘MK 흉내 내기’에 열을 올렸다. 단정한 제복을 입은 운전기사들이 택시 문을 직접 열어주는가 하면 불친절 행위를 하면 요금을 돌려주겠다고 요란을 떨기도 했다. 한때 택시기사들의 선망이던 검은색 중대형 세단의 ‘모범택시’도 그즈음 등장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국 택시 불친절’이라는 오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 시내 법인택시 기사들이 오는 9월부터 근무복을 입는다고 한다. 불량복장에 불친절하기까지 하다는 민원이 많아 서울시가 내린 조치다. 요즘처럼 더운 날 택시를 타면 맨발에 슬리퍼를 신거나 웃통을 거의 벗어젖힌 기사들을 보고 눈살 찌푸린 적이 더러 있는 터라 반갑게 들린다. 하지만 업계에 만연한 불법·편법·탈법 관행을 방기(放棄)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이런 타율 지침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서울시민은 ‘억지 친절’을 받는 고역 하나를 더 달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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