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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정치학

프랑스 하원 선거가 끝났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중도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와 민주운동당(Modem) 연합은 전체 하원의원 577석 중 350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치에서 두 거대 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은 치명상을 입었다. 그나마 공화당은 제1 야당으로서의 지위는 건졌지만, 직전 집권당이었던 사회당은 그 존폐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프랑스의 병’이 그만큼 깊다는 점이다. 프랑스가 앓고 있는 병은 크게 경제 분야의 ‘질환’과 정치 분야의 ‘무기력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런 질환의 결과가 바로 거대 정당의 몰락과 신생 정당의 대약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이런 고질적 질환을 고치려는 유권자들의 의지가 이번 프랑스의 선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4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 유권자 15%의 지지로 LREM은 절대 다수당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이 의미하는 것은, 프랑스에 만연해 있는 정치적 무기력감 덕분에 LREM이 약진한 것이지, 마크롱 정부에 대한 희망 때문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 프랑스 유권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프랑스의 병을 고치려 했다면, 이 정도의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투표해 봐야 바뀌는 게 없을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무기력감이 역설적으로 ‘마크롱’을 ‘스트롱’하게 만들었고, 기존 거대 정당이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정치에 시사하는 바 매우 크다.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도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10%대에 머물러 있다. 야당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 봐야 30%를 못 넘는 게 현실이다. 반대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50%에 이르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3%를 찍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국가는 진보와 보수가 적당한 균형을 이루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쳤을 경우, 언젠가 그 부작용이 나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진보와 보수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요즘 한국당의 모습을 보면, 그 균형점을 찾기에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지금도, 말은 보수의 가치 정립을 떠들고 있지만, 행동은 정말 구태의연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 대통령을 무조건 공격해야만 자신들의 가치가 정립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당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수록, 보수 성향의 국민은 정치적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프랑스처럼 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에 염증을 갖게 되고 한국당을 아예 외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지금의 지지율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프랑스의 사회당처럼, 보수 정당들은 한순간에 군소 정당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당이나 다른 보수 정당들은 지금 자기들끼리 당권을 놓고 경쟁할 때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외부 수혈을 해서라도 당이 바뀌고 있고, 진정한 보수(保守)의 가치를 위해 헌신한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정당의 존재 가치는 이념적 가치에서 파생될 수도 있지만, 유권자들이 정당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한국당의 모습을 보면 후자를 잊고 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