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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유럽작가 작품 잇따라 출간

■ ‘아들의 땅’
문명 사라진 미래… 아이들 성장담

■ ‘페이션스’
죽은 아내 구하려 과거로 시간여행

■ ‘조각가’
예술·인생의 가치와 사랑의 고찰

■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인간관계 부적응자의 ‘새 삶 찾기’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세계적 그래픽 노블 작가들의 대표작이 잇따라 출간되면서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그래픽 노블 시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 노블은 만화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 문학성 높은 만화로 예술적 성향이 강한 작가주의 만화를 칭한다. 몇몇 출판사들이 오래전부터 그래픽 노블을 꾸준히 소개하긴 했지만 시장에서 큰 반응은 얻지 못했다. 한국과 일본 만화에 익숙한 우리 독자들에게 유럽·미국식 그래픽 노블의 빡빡한 지면 구성, 때론 실험적인 내용 같은 장르적 특성이 장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의 강력한 예술 영화 팬처럼 그래픽 노블의 탄탄한 마니아층이 형성되면서 그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또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읽고 자란 세대가 중년에 이르러 적극적 독자군으로 등장한데다 인기 높은 그래픽 노블 대부분은 현지에서 영화 등으로 제작되면서 이미지와 영상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접근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한두 주 사이에도 이탈리아의 대표적 작가 지피의 포스트 지구 종말 서사인 ‘아들의 땅’(북레시피), 미국의 대표적인 그래픽 노블 작가 대니얼 클로즈의 ‘페이션스’(북스토리)와 스콧 맥클라우드의 ‘조각가’(미메시스)가 나왔다. 이와 함께 프랑스 사회심리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로 풀어낸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이숲)도 출간되는 등 각국 대표 작가의 작품들이 잇따라 출간됐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 지피는 나폴리 만화페스티벌에서 ‘미켈루치 최고 만화가상’,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최고작품상-황금야수상’ 등을 받은 이탈리아의 대표 작가. ‘아들의 땅’은 문명이 사라진 가상의 미래, 야만의 생활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을 향해가는 두 아들의 성장담을 그린 묵직한 작품이다. 인간의 문명이 종말을 맞은 뒤, 아버지는 두 아들이 거칠고 미개한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사나운 개로 키운다. 글도 가르치지 않고 감정과 관련된 어떤 단어도 알려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두 아들은 아버지가 매일 밤 쓴 일기장에 담긴 비밀을 풀기 위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미국의 권위 있는 하비상을 수상한 클로즈의 ‘페이션스’는 한번 펼치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흥미로운 시간여행 스토리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음란 전단이나 나눠주면서 자기 혐오에 빠진 사나이 잭 발로. 아내의 임신에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지만 아내 페이션스에게 좀 더 훌륭한 남편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새 출발을 다짐한 그날, 아내 페이션스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던 그는 2029년, 시간 여행을 하는 약에 대해 알게 된다. 그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비해 ‘조각가’는 예술, 인생의 가치와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 가족이 모두 일찍 세상을 뜨고 혼자 남겨진 데이비드는 수중에 남은 몇 달러와 위스키로 자신의 생일을 보낸다. 돈도 의욕도 작품도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못한 데이비드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 묻는다. “데이비드, 예술을 위해서라면 뭘 걸겠니?” 오래전에 사망한 큰할아버지 ‘해리’의 모습으로 등장한 죽음의 신은 데이비드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은 사회심리학자 쥘리 다셰가 쓰고, 유머러스한 그래픽 노블 작가 마드무아젤 카롤린이 그림을 그린 작품.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마그리트가 스스로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일종의 자폐증임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경험을 소개한다.

김요안 북레시피 대표는 “그래픽 노블 마니아층이 생각보다 단단하고, 매우 전문적인 수준”이라며 최근 잇따라 나오는 수준 높은 그래픽 노블을 보면서 이 시장이 앞으로 훨씬 더 활기를 띨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