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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목받는 대한·서울극장

‘대한극장 개봉작’이 훈장이던 때가 있었다. 영화가 있어도 걸 곳이 부족했던 시절, 대한극장이나 서울극장에서 개봉됐다는 사실은 일종의 ‘볼 만한 영화’라는 보증수표였다. 그래서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될 때 케이스 상단에는 ‘○○극장 개봉작’이라고 떡 붙었다.

1990년대 후반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가 대거 등장하면서 점차 대중과 멀어진 대한극장(사진), 서울극장 등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의 개봉과 더불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옥자’의 투자사인 넷플릭스는 지난 19일 일간지에 향수를 자극하는 흑백 영화 광고를 실었다. ‘옥자, 未來 먹거리인가? 親舊인가’라는 제목을 비롯해 ‘뉴-요크’ ‘깐-느’ 등의 표기법이 눈에 띈다. 최첨단 플랫폼을 갖춘 넷플릭스가 구식 광고를 택해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상영관의 이름을 넣은 것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 신식 멀티플렉스의 상영 거부를 비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극장은 ‘옥자’의 공식 행사도 무리없이 치렀다. 13일 열린 VIP 시사회 때는 약 2500명을 수용했고 봉 감독, 틸다 스윈턴 등 ‘옥자’의 주역을 비롯해 배우 수애, 김옥빈, 구혜선, 천우희, 박해일 등도 대거 참여했다. ‘옥자’ 국내 배급을 맡은 NEW 관계자는 “거대 멀티플렉스에 비해 시설적으로 부족한 면은 있으나 집중도는 굉장히 높은 영화관”이라며 “그동안 CGV나 롯데에서 주로 시사회를 열었는데 향후 필요에 따라 대한극장을 활용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항간에는 ‘옥자’를 기점으로 대형 멀티플렉스 일변도를 벗어나 중소 극장들의 시대가 다시 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13일 대한극장 주변 골목은 VIP를 태우기 위해 대기하는 차량들로 인해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VIP들의 이동 경로도 다양하지 않아 경호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날 참석했던 한 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주차 시설이 협소하고 동선을 짜기가 쉽지 않았다”며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라고 말했다. 공식 상영은 대한극장에서 진행했으나 ‘옥자’ 제작진과 출연진이 참석하는 레드카펫 행사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이유다.

하지만 영화의 규모에 따라 얼마든지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측면에서는 의미가 크다. 대한극장은 지난해 10월에 배우 백성현 주연의 ‘워킹스트리트’, 2015년 8월에는 배우 황정음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 ‘돼지같은 여자’의 언론 시사회를 치르는 등 간간이 공식 행사를 진행해 왔다.

대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도 강점이다. 통상 1개관을 빌려서 행사를 진행할 때는 해당 상영관의 좌석수만큼의 티켓값을 지불한 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각종 행사가 잦은 왕십리CGV, 롯데건대입구관 등은 할인 혜택이 거의 없고 원하는 시간대 예약이 쉽지 않다.

대한극장 측은 “상영관을 통째로 빌려서 행사를 치를 때는 내부적으로 할인 혜택을 적용한다”며 “‘옥자’ 관련 행사는 잘 마쳤지만 이후 계획된 행사는 아직 없다”고 전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