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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바른사회 공동대표

오늘날 독일 경제가 튼실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독일은 통독 후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좌파 성향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3년 사회복지 혜택을 축소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는 ‘하르츠 개혁’으로 알려진 ‘어젠다 2010’을 선언했다. 역설적으로 그는 개혁 조치로 인해 실각했다. 하지만 그를 이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전임 정부 개혁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정책의 연속성은 유지됐고 독일 경제는 부활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6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관련 후속조치 방안’을 의결했다. ‘후속조치’로 표현했지만, 내용적으론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 폐기를 의미한다. 우선, 성과연봉제 권고안의 이행 기한을 없애고 기관별 특성과 여건을 반영해 시행 방안 및 시기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율 결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나 마찬가지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119개 공공기관의 임금체계는 조만간 연공서열 중심의 과거 호봉제로 돌아갈 것으로 예측된다.

성과연봉제는 선진 외국은 물론 대부분의 국내 민간 기업들이 진작부터 도입하고 있는 제도로, 사무관 이상 공무원들도 적용받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는 전체 연봉에서 성과에 연동되는 비중을 최대 30%로 한정한 ‘기초적 수준’으로 설계돼 있다. 결코, 과격한 제도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는 성공작으로 평가됐다. 지난해 1월 공공기관 120곳 전체를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지난해 5월 말 기준 114개 기관이 성과연봉제를 채택했으며, 그 후 119개로 늘었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압력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기준으로 332개 공공기관 중 영업이익을 낸 곳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1곳에 불과하다. 공기업은 연성 제약으로 도산의 우려가 없다. 그만큼 체질 개선을 통한 비용 절감이 절박하다.

공공부문 성과급 폐지로 공공부문 개혁은 후퇴가 불가피해졌다. ‘신(神)의 직장’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공부문 개혁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책의 미(微)조정이나 수정은 있을 수 있지만, 제도 자체를 백지화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간 이행 과정에서 쏟아부은 시간과 설득비용 등의 정책자원은 ‘매몰비용’이 된다. 더욱이 우수 성과자에게 이미 지급된 1600억 원의 인센티브를 반납하라는 주문은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악수(惡手)가 아닐 수 없다.

호봉제는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도 연공서열은 반대한단다. 성과연봉제 대신 직무의 중요도와 난이도를 기준으로 직무 가치와 서열이 결정되는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단다. 직무급제는 직무 가치를 측정할 때 공정성을 기하기 어렵고 직무 간 차등의 합리성을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직무급제는 업무에 따라 근로자 서열이 나뉘기 때문에 성과연봉제와는 차원이 다른 노조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노조는 ‘공공성의 극대화’를, 정치권은 ‘사회적 합의’를 외칠 게 불을 보듯 예측된다. 결국, 세월만 보낼 것이다.

성과연봉제는 공공부문의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따라서 정권에 상관없이 항구적으로 그 방향성은 존중되고 추진돼야 한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것은 정책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