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지난 1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지역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출발했지만, 그 외연을 넓혀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주형 일자리’가 일자리를 늘리면서 노동자의 삶의 질도 높이고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광주광역시 제공

- ① 윤장현 광주시장

‘광주의 생존전략’ 고민서 출발
생산 혁신 - 노동시장왜곡 개선
소득격차 줄여‘사회통합’기여

‘배틀 필드’ 광주 이미지 벗고
기업 투자할만한 환경 만들어
일자리 추경안 예산 3억 반영
靑서도 ‘핫라인’ 만들어 챙겨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자리 창출이 새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떠오르며 지역 일자리 창출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적정 임금과 노사 책임경영 등을 내세운 ‘광주형 일자리’는 새 정부 일자리 창출의 모델로 부상했다. 윤장현 광주 시장은 “대기업 중심의 고임금과 유연성 없는 노사관계 때문에 머지않아 한국 제조업에 경쟁력 위기가 올 것”이라며 “노사관계와 생산방식을 혁신하고 노동시장의 구조화된 왜곡현상을 바로잡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윤 시장은 “광주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불의에 대한 저항이 마치 광주의 모든 것인 양 각인되면서 ‘배틀 필드(battle field)’ 이미지가 형성돼 기업이 오기 힘든 곳이란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며 “광주형 일자리는 지역의 생존전략을 고민한 데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윤 시장 인터뷰는 지난 16일 그의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정부의 일자리추경안에 ‘광주형 일자리’ 연구용역비가 반영됐다는데.

“일자리위원회가 공공, 민간, 지역밀착형 등으로 나눠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역밀착형 분야에 ‘광주형 일자리’ 연구용역 예산 3억 원이 반영됐다. 예산 사용 목적이 ‘광주형 일자리 도입을 위한 모델 개발 및 시범사업 실시’로 돼 있다고 한다. 그 예산이 고용노동부에 배정되면 정부 차원의 연구가 본격화할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의 지원도 가시화되는 듯하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5일 광주를 방문해 ‘광주형 일자리’의 청와대-광주 간 핫라인임을 자임하고 이 문제를 챙길 청와대 비서관도 지정해주셨다. 우리 시에서도 청와대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협력할 태스크포스(TF)를 조만간 꾸릴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에 처음부터 관여해온 박병규 사회통합추진단장을 광주시 일자리 특보로 임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다.

“지난 정부에서는 눈길(관심)을 주지 않았다. 정진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광주형 일자리가 합리적인 제안’이라며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뉴스도 있었지만…. 장 실장이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해서 고무적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지향하는 바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 격차를 해소하면서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사관계와 생산방식을 혁신하고 노동시장의 구조화된 왜곡현상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자리를 의미하는지.

“핵심내용은 △근로시간 단축과 적정 임금 △원·하청 관계 개선 △노사책임경영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유연 근무를 확대하면 일·가정의 양립이 가능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 그 대신 임금은 적어지지만 그만큼 고용 여력이 생긴다. 원·하청의 경우 종속 관계에서 협력적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처럼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원가 계산을 할 때 원가에 (하청 직원들의)임금을 포함시키고 마진(이익률)을 따로 보장하면 하청 업체도 기술개발·인재양성 여력이 생긴다. 같은 업종 간 임금 격차도 해소된다. 또 노사가 경영에 공동책임을 지면 투명성 제고, 불량률 저하 등으로 기업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3년 가까이 조사·연구를 거치면서 이론적 틀이 잡힌 것 같다. ‘광주형 일자리’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나.

“지역의 생존전략을 고민한 데서 출발했다. 과거에 광주는 정부 주도 개발정책에서 비켜 있었던 곳이다. 자동차·철강·조선·중화학 등 산업은 영남 쪽에, 정보기술(IT)산업은 수도권과 대전 이북에 편중됐다. 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불의에 대한 저항이 마치 광주의 모든 것인 양 각인되면서 기업이 오기 힘든 이미지가 형성됐다. 전국의 노동·농민·학생운동 단체들이 모이는 ‘배틀 필드’가 되다 보니 이미지가 덧씌워진 억울한 측면이 있다. 두 가지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고민한 끝에 구상하게 됐다.”

윤 시장은 한국 경제의 위기를 함께 들여다보면서 ‘광주형 일자리’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

“머지않은 기간 내에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위기가 올 것이라고 봤다. 이유는 대기업 중심의 고임금, 유연성 없는 노사관계 때문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매력이 있는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고…. 이런 위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를 낙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1990년대 후반 세계경제 위기를 맞았을 때 독일의 자동차 회사가 노·사·정 합의하에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는 대신 적정 임금의 일자리를 자국 내에 창출한 선례를 참고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의 제조업 르네상스까지 염두에 둔 광주발 노력이다.”

―방법론 중 지방정부가 노사문제에 개입한다는 부분이 특이하다.

“노사문제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 커뮤니티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고 어떤 노력을 하면 어떤 길을 가게 된다는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2014년 9월) 사회통합추진단을 만들고 단장으로 기아차 노조 광주지회장 박병규 씨를 모셔왔다.”

윤 시장은 양극화 해소에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했더니 1석2조 효과가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우리 내부의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향해 그렇게 가야 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시와 출자·출연기관부터 모델을 보여주자고 했다. 민선 6기 들어 청소·시설관리 등 용역회사 직원 772명을 직접 고용한 뒤 2년이 지나면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고 있다. 정규직화 후에 예산이 더 많이 들거나 노조가 더 드세지는 등의 부작용은 없고, 오히려 반대다. 직접 고용 전에 비해 최근 2년간 관련 예산이 2억4000만 원 절감됐고, 해당 직원들의 임금은 조금씩 올랐다. 그들의 얼굴이 훨씬 밝아졌다.”

―‘광주형 일자리’를 실현하는 데 지방정부가 느끼는 한계는. 그리고 정부가 해줘야 할 몫은.

“산업단지 인프라 구축, 특히 땅값 문제는 지방정부가 해줄 수 없다. 중앙정부가 특별 조치를 통해 공단의 지가, 세제, 전기료 등 문제를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 광주형 일자리 확산과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까닭이다. 지방정부로서는 젊은이나 소시민들이 가장 재정적 압박을 받는 주거 문제와 관련, 공단 주변에 지어 값싸게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다. 주거·복지 문제를 지원해줌으로써 연봉 3000만∼4000만 원 받더라도 5000만∼6000만 원 정도의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숙련도 높은 퇴직 근로자를 적은 임금에 채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윤 시장은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을 위해 시민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권 교체가 됐다고 해서 자구 노력 없이 정부만 쳐다보면서 왜 우리 동네는 안 해 주세요 하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 기업이 올 만한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불의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를 참여와 창조의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저는‘피 흘리지 않는 혁명’을 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광주=정우천 기자 sunshi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