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용우 회장이 지난 3일 제주 롯데스카이힐 제주골프장 힐 코스 9번 홀 주변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다.

최용우 신조무역㈜ 회장

최용우(71) 신조무역㈜ 회장은 무역업으로 잘나가던 12년 전,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지금까지 제주에서 새 인생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 3일 제주 롯데스카이힐 제주 골프장에서 최 회장을 만났다. 마침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롯데칸타타 여자오픈이 열린 데다 서울에서 손주들이 내려와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충청도 바닷가가 고향인 그는 ‘바다가 있는 곳에서 골프를 실컷 즐기자’라고 마음먹고 2005년 제주도로 내려왔다. 월말쯤 서울에서 며칠간 회사 업무를 정리하곤 제주로 ‘컴백’해 부인, 지인들과 주 5회 라운드를 펼친다.

최 회장이 1975년 창업 이래 지금까지 자신의 손으로 빚은 누적 수출액은 2억 달러가 넘는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보다 더 큰 규모로 무역업을 하던 혈기왕성했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최 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사업보다 건강에 더 큰 관심을 쏟게 됐다. 은퇴 후 바닷가에서 살겠다던 어릴 적 꿈을 제주에서 실현했다. 최 회장은 “인생 최고의 결정은 제주로 내려온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최 회장의 인생에서 골프는 중요한 구심점이 된 지 오래다. 그는 1980년 회사가 자리 잡을 무렵, 친구 따라 수원골프장에 갔다. 첫 골프장 나들이. 친구가 쓰던 골프채로 ‘데뷔’했고, 친구에게 완패한 뒤 새 골프채를 구입했다. 1년 빨리 골프를 시작한 친구를 추월하겠단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연습했다. 친구의 키가 10㎝ 더 컸기에 장타를 날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이로 인해 샷을 할 때마다 이를 악무는 버릇이 생겼다. 이가 상해 치과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치과에서 마우스피스를 하고 골프장에 가라고 권고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요즘엔 힘이 빠지고, 오랜 ‘구력’ 덕분에 이를 악무는 습관은 없어졌다.

최 회장은 친구에게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옥 옥상에 그물망을 설치한 ‘미니 인도어’를 조성하고 틈만 나면 연습했다. 낮에는 업무 처리 탓에 연습을 못 했지만, 퇴근 직전이면 어김없이 옥상에 올라가 훈련했다.

이 사옥은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와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의 사저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연희궁’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소리가 심하게 울려 퍼졌다. 최 회장이 옥상에서 연습하면 사저 경호실 요원들에겐 비상이 걸렸다. 경호원들은 그를 몇 번이나 찾아와 “골프 소음이 각하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으니, 소리가 나지 않게 자제해 달라고”고 부탁했다. 연습을 계속하다간 괜한 오해를 받을 것 같아 옥상을 폐쇄했다.

최 회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1언더파 71타. 골프에 입문한 지 10년 정도 흐른 40대 초반에 작성했다. 당시 골프용품은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이 좋지 않았지만 드라이버로 210m 이상을 날리곤 했다. 막대기 같은 스틸 샤프트 아이언으로 핀에 붙일 만큼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다. 친구를 평생의 라이벌로 삼으면서 스스로를 자극하고 단련했던 게 기량 향상으로 이어졌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10여 년 만에 70대 스코어에 진입했다.

최 회장은 “홀인원이 사업가로서의 인생을 바꿔 놓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64학번) 출신인 그는 1993년 4월 경기 용인 코리아골프장에서 열린 대학 동문 골프대회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경험했다. 모임 참석자 40명에게 쏟은 홀인원 뒤풀이 비용은 꽤 많았다. 하지만 홀인원의 행운을 믿고 사업가로서 입지를 굳히는 중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당시 베트남 공장 설립을 망설였지만, 홀인원의 ‘효험’을 믿고 베트남 진출을 결정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였지만 도이모이(경제개방)정책을 표방하며 외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최 회장은 호찌민 인근에 가방공장을 세웠다. 처음엔 현지 근로자 1000명으로 시작했지만, 3500명까지 규모가 늘어났다. 최 회장은 현지 자동차 번호판 ‘0001번’을 받는 등 베트남 정부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최 회장은 현지인들로부터 차별, 멸시를 받았던 ‘라이따이한’ 채용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회사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훗날 공장 책임자 등 요직에 올랐다.

최 회장은 3차례 롯데스카이힐 제주의 클럽챔피언에 출전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챔피언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공식 대회이기에 프로처럼 완벽하게 골프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사교 골프와는 다른 긴장감을 유지하는 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사윗감 ‘면접’을 라운드하면서 진행했다. 그렇게 사위 둘을 골랐다. 골프를 함께하다 보면 성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제주에서만 세 차례나 홀인원의 기쁨을 누렸다. 최근 트리플 보기를 2개나 범하고도 78타를 남겼다”면서 ‘에이지 슈트’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제주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