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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탓 국내 출간은 미뤄져
언제쯤 나올지 일정 관심 쏠려

대만에서 먼저 출간된 소설가 박범신(71)의 신작 장편 ‘유리’(流離·은행나무)는 언제쯤 국내 독자들과 만나게 될까.

‘유리’가 지난 5일 대만 최대 문학출판사인 잉크(INK)에 의해 번역 출간된 이후 국내 출간 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리’는 원래 지난해 10월 나올 예정이었다. 지난해 4∼7월 카카오페이지에 인기리에 연재된 데 힘입어 출판사가 한국, 대만 동시 발간을 추진했다. 제본 직전의 초쇄 5000부를 찍어놓고 주문 예약까지 받았다. 그러나 갑자기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면서 모든 게 중지됐다.

‘유리’는 박 작가가 그동안 발표해왔던 장편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처음으로 판타지 형식을 빌렸다. 유리가 구렁이 같은 동물과 대화하거나, 방랑 중에 귀가 큰 여왕을 만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우화적이고 풍자적이다. 공간적 배경인 수인국, 화인국, 대지국이 일제강점기 한·중·일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는 서사적이다. 화인국의 지배를 받는 수인국 태생의 유리는 대지국으로 방랑을 떠나 모험을 통해 성장한다. 판타지적 필치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흡인력이 있다. 카카오페이지 연재 당시에도 15만 명 이상이 소설을 구독했다.

하지만 국내 출간 일정은 여전히 미지수다. 작가나 출판사 모두 부담이 적지 않다. 문학계 전반으로 퍼졌던 성추행 논란 파장이 다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에 박 작가 작품 출간에 나섰다가 자칫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는 탓이다. 문학계 내부에선 “작가가 충분히 소명했는데도 그 사건의 파장 때문에 작품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문학계의 손실”이라는 목소리가 있다.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은행나무 측은 우선 소설의 후반부를 보완하는 작업부터 할 계획이다. 박 작가가 “카카오에 연재할 때 서둘러 결말을 낸 느낌이 없지 않아 후반부에 700장 정도를 더 보태겠다”는 뜻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당초 1200장 분량에서 최대 2000장까지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나무 측은 “‘유리’의 출간 지연에 따른 출판사의 손해가 문제가 아니다. 역량 있는 작가의 역작을 독자들에게 소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