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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일자리 구하기만큼 일자리 만들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세계경제가 직면한 공급과잉·과당경쟁·수요부족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쓰나미까지 밀려오면서 ‘일자리의 종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청년이 한 회사 도움으로 ‘식빵트럭’ 창업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는 일자리를 얻었지만 주변의 동종업계 취업자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정부 지원으로 쇼핑몰 사장이 된 주부는 ‘알리바바 직구’에 밀려 곧 폐업할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한 전직 장관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일자리 만들기가 힘들다”고 했을까.

일자리 하면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7년 전, 대통령이던 그는 LG화학의 전기자동차 배터리공장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홀랜드행 전용기에 오른다. 홀랜드는 워싱턴에서 1080여㎞ 떨어진 미시간주 촌 마을이다. 참석 계획이 없던 구본무 회장이 단박에 달려갈 만큼 전격적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기에 미 대통령이 만사를 제치고 날아가 축사를 했을까. 답은 300명. 일자리 하나라도 붙잡으려는 그의 진심이 읽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에 다걸기하고 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같은 자조적 은어들이 젊은층 사이에 유행하는 터이니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한 언론이 취임 한 달간 공식 발언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언급한 정책단어도 ‘일자리’(연관단어 포함 146번)였다. “단 1원의 예산도 일자리에 쓰겠다”는 발언엔 비장함이 묻어 있다. 12일엔 헌정사상 처음으로 일자리용 추경 처리 협력을 ‘간청하는’ 국회 시정연설도 했다.

하지만 걱정이 깊어진다. 문 정부가 일자리 고차 방정식을 1차 방정식쯤으로 너무 쉽게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 만들 궁리는 안 하고 일자리의 양보다 질에 집착한다든지, 혈세로 일자리를 양산하려는 정책이 그런 판단의 근거다. 정부에 비협조적인 기업을 ‘주먹·세금·규제’로 팔 비틀려 하니 더욱 그렇다. ‘관제 고용’이 ‘관제 실업’을 낳는다는 교훈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골든보이’(월급 많은 공무원 별칭)의 나라 그리스의 몰락이 단적인 예다.

딱하게도 벌써 그런 조짐이 꿈틀댄다. ‘단가가 높으면 물량이 준다’는 세상 이치에 반하는 하책의 역습이 시작된 셈이다.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이후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고 있다. ‘정규직화’ 명분 아래 대기업에 직원을 가로채일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 반발도 거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시위도 봇물이 터질 기세다. ‘최저임금 1만 원’ 약속에 자영업자들도 아우성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우려하는 소리도 쏟아진다. ‘81만 개’ 공약을 강행하면 세세연년 100조 원이 넘는 재정 부담이 커진다거나, 세금으로 급조한 일자리는 ‘한 줌의 흙’이라는 분석은 빙산의 일각이다.

문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노조 편향적이다. 그러나 정책도 새들처럼 양쪽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다. 그래서 문 정부에 당부한다. 이미 확정했거나 확정할 정책은 지지자들에게 한 약속이니 추진하라. 단, 전제조건이 있다. 그 반대급부로 경제 자유화를 보장할 조치도 꼭 병행하라. 그래야 재계와 모든 계층도 문 정부 정책을 수긍한다. 세금을 깎고 규제를 풀어준 정부에 재계는 임금인상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화답함으로써 일자리 개혁에 성공한 일본의 ‘주고받기’식 상생을 배워야 한다. 3가지만 제안한다.

당정은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낼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조속히 처리하라. 규제프리존법에 대해선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긍정적인 만큼 더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규제개혁 없는 일자리 창출은 말장난이다. 둘째, ‘귀족노조’의 양보를 이끌어낼 노동개혁을 관철하라. 그러지 않으면 문 대통령이 새 국정 화두로 제시한 ‘경제 민주주의’는 재벌개혁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다. 끝으로, 노조에 귀 기울이는 만큼 재계와도 수시로 소통하고 협조하라. 고용주체인 이들을 외면한 일자리 정책은 반쪽짜리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1885년 케임브리지대 교수 취임강연 때 “경제학도는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을 가져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선의만으론 ‘정책다운 정책’이 만들어질 수 없음을 문 대통령과 정부의 핵심 경제 라인은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