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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脫北해 서울서 ‘한의사 家業’ 8代째 잇는 정일경 씨

집안서 이어져 온 의술로 치료

脫北해 서울서 ‘한의사 家業’ 8代째 잇는 정일경 씨

탈북자 출신 한의사 정일경(43·사진) ‘100년한의원’ 원장은 북한을 떠난 지 18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가끔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꾼다. 첫 번째 탈북 시도 때 붙잡혀 고문을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100년한의원에서 만난 정 원장은 “같은 처지의 탈북자들이 정신적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한의사로서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1974년 8월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정 원장의 집안은 8대째 한의사 직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 원장의 아버지는 평양의대에서 한의사 자격을 딴 1기 졸업생. 하지만 출신 성분은 좋지 못했다. 정 원장의 아버지는 북한의 출신 성분 중 가장 낮은 복합계층(또는 적대계층)에 속했다. 게다가 정 원장의 아버지는 1985년 가족을 두고 혼자 탈북했다. 정 원장의 부친에게 치료를 받았던 당시 국가안전보위부 간부가 ‘곧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귀띔해줬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아버지와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원장은 대학 진학을 꿈꾸기도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한의사가 되는 길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믿었기에 오히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정 원장은 결국 수석으로 청진의대에 입학했다. 뛰어난 성적 덕분에 북한 당국도 정 원장의 대학 진학을 막을 수 없었다.

정 원장이 탈북을 결심한 건 대학을 졸업한 1998년이었다. 출신 성분의 한계를 벗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정 원장은 먼저 탈북해 중국과 러시아에서 생활하던 아버지와 비밀리에 연락했지만 첫 번째 탈북 시도는 실패에 그쳤다. 이때 붙잡힌 그는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듬해 두 번째 시도에서 탈북에 성공했다. 정 원장은 2000년 아버지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정 원장은 2001년 상지대 한의대(석사 통합 7년 과정)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한의원을 개업, 경희대 대학원에 진학해 한의학 박사학위를 땄다. 출신 성분과 부친의 탈북 전력에 가로막혔던 꿈을 한국에서 펼치게 됐다. 2003년엔 어머니도 탈북했다. 2004년에는 경희대에서 만난 부인 한봉희(41) 씨와 결혼도 했다. 부인도 탈북자 출신이다.

정 원장의 목표는 자신의 의술로 탈북자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고치는 것이다. 정 원장은 “많은 탈북자가 나처럼 크고 작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며 “같은 처지에서 공감해주고 이해할 수 있기에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진맥을 돕는 은빛 쇠반지, 침을 뜨겁게 달궈 환부에 놓는 불침 등 집안에서 이어져 온 의술을 계승·발전시켜 난치성 만성 질환 치료에도 집중하고 있다. 정 원장은 “지난달 암, 당뇨 등 난치병을 한의학 전통에 따라 뿌리부터 치료하는 난치병 특수 클리닉을 새롭게 열었다”며 “선조들의 지혜를 발전시킨 자연치유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경기 고양시에서 서울 중구까지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것 자체가 북한을 떠났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
사진 =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