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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80% 넘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항간에선 그 비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던 것과 정반대로 하는 것이란 우스개도 나돈다. 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진짜 비결은 문 대통령의 격의 없이 낮은 곳을 챙기는 진지함이다. 인천공항을 찾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한 문 대통령 앞에서 눈물 흘리는 비정규직 직원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차별에 우는 비정규직을 보듬는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도 2013년 2월 25일 취임식 직후 광화문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서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해 달라’는 집배원의 희망 메시지에 “임기 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힘쓰겠다”고 힘주어 약속했다. 그즈음 한화그룹과 이마트 등이 대대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계획을 앞다퉈 내놓았다. 정규직화는 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진전 없이 문 대통령에게 똑같은 숙제가 떠넘겨졌다.

애초에 정규직은 없었다. 비정규직이 출현하면서 기존의 무기(無期) 전일제 근로자는 ‘정규직’이란 새 신분을 얻었다. 정규직이 아닌 일자리를 포괄하는 비정규직은 양태가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군상을 한 범주로 묶다 보니 실체가 왜곡되고, 해법도 미궁에 빠지고 만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 정규직화에 포함한 아웃소싱 인력이 대표적이다. 이들 근로자는 소속 회사에선 정규직이어도 장소를 옮겨 근무하면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불러가면 인력을 제공하던 중소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구글에서는 정규직 수와 비슷한 7만 명의 임시·하청 근로자가 제각기 업무를 수행하지만, 정규직화 요구 목소리는 없다. BMW 라이프치히 공장 인력의 57%가 사내도급 및 파견근로자다. 다양한 형태의 인력 운용은 기업엔 선악을 떠나 혁신전략이고,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더 확산될 것이다.

문 정부의 비정규직 해법은 쾌도난마식으로 명쾌하다. 비정규직을 없애면 정규직만 남지 않느냐는 거다. 공공부문에서 모두를 평균 연봉 6600만 원짜리 정규직으로 만드는 일은 세금을 쓰면 된다. 어려울 게 없다. 그러나 임기가 끝난 후 구도는 흔들릴 것이다. 아무리 공기업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오래 버틸 순 없다. 획일적인 정규직화는 역차별을 부를 수도 있다. 비정규직이 대거 정규직으로 되면 인건비 부담이 늘고 이는 신규 채용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재 직장을 다니는 비정규직엔 축복이겠지만, 괜찮은 일자리를 쳐다보며 고시원에서 밤을 새우는 취준생에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비정규직은 열악한 처우 탓에 ‘나쁜 일자리’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진출·입이 자유로운 비정규직을 원하는 수요도 분명 존재한다. 비록 체념의 사례도 포함됐겠지만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비정규직의 53%에 달한다. 이 중에는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도 적잖다. 유럽 등에선 파트타임 근로가 일상화돼 있다. 비정규직 국제비교에 쓰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만 해도 무기 노동자(permanent worker)와 임시 노동자(temporary worker)로 구분할 뿐이다. 한국은 시간제·용역 등까지 포함시켜 비정규직이란 주홍글씨를 새긴다.

‘9 to 5’ 근무 형태는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신산업이 진전되면서 나라 안팎에선 다양하고 창의적인 근무제가 속속 나오는 판이다. 기존 정규직 형태가 선(善)이고, 나머지는 제거할 악(惡)이라는 시각은 시대착오다. 다양한 비정규직은 시장 수요가 만든 것이다. ‘비정규직 0’ 정책은 실체는 두고 그림자만 지울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비정규직의 존재가 아니라 처우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과 복지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며칠 전 고용노동부 발표로는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의 66.3%다.

비정규직을 지우는 방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없다. 정규직 신화를 깨는 ‘정규직 0’ 식의 역발상이 필요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큰 줄기 아래 호봉제 등 소수에 쏠린 기득권을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년을 보장하는 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주는’ 방식까지 제시한 바 있다.(‘왜 분노해야 하는가, 2015) 그렇다면 문 정부의 주타깃은 대기업 이전에 특권노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