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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 권김현영,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 지음 / 교양인

페미니즘의 주된 담론이었던 남성성의 위기와 가부장제의 쇠퇴 문제는 이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자부심 넘치던 남성의 가부장 역할은 진즉 무너졌다. 더 이상 전 가족들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지 못한다. 지난 30년 동안의 전 세계적 경제위기의 결과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여전히 여성들에 비해 전통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저자들이 받아든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여성학자, 페미니즘 연구자, 문화이론가, 인권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연구모임 ‘도란스’가 여섯 명 필자의 글을 추려 펴낸 책이다. 본래 개정증보판으로 기획했다는데, 몇몇 저자가 아예 새로 글을 써서 끼워 넣으면서 ‘새 책’이 됐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남자다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그 사회적 의미는 어떻게 구축돼왔는가를 살핀다.

책에서 특히 눈길을 붙잡는 건 서구식 여성주의 이론으로는 풀어낼 수 없었던 한국적 남성성의 문제를 식민지 현실 속에서 찾아낸 글이다. 남성이 남성성을 획득하고 수행하는 과정은, 남성이 살아가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남성 혹은 여성들과 맺는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저자의 분석과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식민통치의 현실 속에서 ‘역할 모델’을 잃어버린 식민지 남성들의 문제와 남녀에 대한 이분법적 담론이 등장하는 과정을 살피는 글도 흥미롭다. 징병검사와 남성의 몸 등을 통해 신체적 남성성의 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얘기도 있고,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스스로 ‘찌질함’을 앞세운 남성과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의 등장을 분석하는 글도 있다. 글이 분석적이고 치밀하며 단정적이고 직설적인 건 아마도 저자들이 모임을 갖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남성다움’이란 의미 구성의 과정에 개입하기 위한 실천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리라.

남성이 여성에게 “내가 네 팔자를 펴주겠다”거나 “결혼하면 아침밥은 차려줄 거지”라는 프러포즈가 아무렇지도 않은 남성이라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책 앞머리에서 저자는 “이런 프러포즈는 곧 여성에게 ‘평생 남자에게 운명을 맡긴 채 50년 동안 아침밥을 차려줘야 할지도 모르는’ 공포 같은 삶을 의미한다”고 일갈한다. 책의 내용에 불편해하는 남성이라면 더욱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찌질한’ 한국 남성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강박과 불안에서 벗어나 상호의존과 보살핌의 사회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남자’가 한국 남자의 지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향한 것이니 말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