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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현 연세대 교수 경제학

출범한 지 20일에 불과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사회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소득 주도의 국민성장을 위해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취임 1호 업무로 지시한 데 이어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을 만들고 국가 주도의 일자리 창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달의 15~29세 청년실업률은 11.2%에 이르렀으며, 전체 실업률도 4.2%로 각각 4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 만큼 일자리 창출과 국민 소득 증대라는 정부 정책의 큰 방향에는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듯하다.

문제는 각론이다. 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zero)화’ 의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재원(財源)이다. 지금 당장은 재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공무원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호봉이 올라감에 따라 임금에 대한 부담이 커지게 되고, 그 부담은 결국은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정규직 비율을 일정 수준 넘지 못하게 하는 ‘비정규직 부담금 제도’가 아직 법제화되진 않았지만, 이 공약이 실제로 이행될 가능성이 큰 만큼 민간 기업들은 당황해하고 있다. 실제로 민간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벌써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보다는 여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된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1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644만여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약 95%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 문 대통령이 ‘반성’하라고 질타한 경총의 회원사 중 90%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국내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선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투자를 확대하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중소기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압박할 경우, 그로 인한 임금 부담으로 신규 채용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또, 비정규직 근로자로서는 힘들게 구한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잃을 우려가 있다.

그리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못한 중소기업의 경우 향후 구인난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그 자체가 ‘불변’의 목표가 돼선 안 된다. 여러 가지 부작용 가능성까지 충분히 검토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최근 일본 정부는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한정(限定) 정사원’ 제도를 권장하고 있다. 정규직과 똑같은 정년, 임금, 복리후생을 보장받되 직종, 근무 시간, 근무 지역이 한정된 정규직 제도로, 우리가 눈여겨 볼 만하다.

이처럼 정규직-고임금과 비정규직-저임금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라, 다양한 근무 형태를 고려하면서 그 속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 제도를 이룰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특히 결혼·육아 등의 문제로 스스로 비정규직을 택하는 근로자의 경우, 원하는 시간만큼 일하게 하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가 오히려 선(善)이 될 수 있다.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호봉제가 아니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하는 성과연봉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일자리 창출의 큰 축을 담당하는 기업의 역할을 인정하고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재계와도 소통·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