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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외교의 길’ 펴낸 한승주 前 외무장관 인터뷰

“외교정책을 과격하게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의연하고 일관성 있게 정책을 운영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 중국과의 우호 관계, 일본과의 협조관계, 이런 것들은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외교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감정과 이념,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실용적 리더십이다.”

김영삼 정부의 외무장관, 노무현 정부의 주미 대사를 역임한 한승주(77·사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외교 현장에서 겪은 경험과 소회를 담은 회고록 ‘외교의 길-평화를 향한 여정’(올림)을 출간했다. 그는 2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외교정책 골격이 드러나지 않았고 팀도 완전히 꾸려지지 않은 지금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기보다 우리의 상황과 전략을 점검하고, 분석하고, 논의하는 데 쓰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 외교가 당면한 위기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북한의 핵 무장, 미국 우선주의, 부활하는 주변국의 대국주의, 갈등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줄타기, 그리고 우리의 세 가지 결핍이다. 세 가지 결핍이란 ‘리더십’ ‘전략’ ‘국민적 합의’이다. 한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와 리더십 안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회고록에서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과 함께 촉발돼 94년 고조된 북핵 위기 당시 제기됐던 미국의 북한 공격설과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과장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국민은 물론 대통령까지 미국의 폭격을 우려했지만 그 뒤 빌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안보 당사자들과 두루 만나 확인해 본 결과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고 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그때 “내 서랍에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긴급사태)’이 있긴 했지만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미국 외교·안보 관계자들도 북한을 공격하기로 방침을 정하는 단계까지 간 일도 없고, 게다가 그런 계획을 한국의 동의 없이 강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또 주미 대사로 일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외교 비화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이 반미 이미지가 강하고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이 간혹 미국의 심사를 거슬리는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미국 정가의 평가는 오히려 좋았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우호적 언사보다는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재배치 같은 협조적 행동이 긍정적으로 인정받았고,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행동이 언사보다 훨씬 좋다(His Deeds are better than his word)’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념적 성향이 거의 정반대인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외교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행운이었다”며 “무엇보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한국 외교에 실용주의를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으로도 다행이었다”고 회고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