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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취임 후 보름,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지 각인에 성공했다. 인사의 형식, 국회·국민·언론과의 소통 스타일, 움직임 등에서 상상 이상의 파격과 참신함을 선보였다. 취임 2주차 국정수행 지지율은 87%(한국갤럽)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야권에서도 “깜짝 놀라게 잘한다”는 극찬이 나왔다. 하지만 스타일과 실체가 늘 같을 수만은 없다. 중요한 건 취임 초 허니문 분위기 속에서 이미지 정치에 묻힌 실체를 바로 보는 것이다. 기자가 문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의 말과 행적들을 기록한 취재수첩을 들여다보니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잘못이 적지 않았다. 그런 게 묻히고 쌓이면 ‘적폐’가 된다.

첫째, 인사 원칙과 약속을 파기했다. 문 대통령은 위장전입을 비롯한 5대 비리를 공직 후보자 배제 원칙으로 내걸었지만 그 약속을 어겼다. 청와대가 먼저 나서 장관 후보의 위장전입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걸 솔직함이라고 주장할지 모르나 기자가 보기엔 꼼수다. 지도자의 약속은 무거워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권력은 신뢰받을 수 없다. 둘째, 서울중앙지검장 인사를 하면서 법절차를 무시했다. 검찰청법이 요구하는 절차와 제청 과정이 불투명하다. 윤석열 검사의 발탁승진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장을 고검장급에서 지검장급으로 낮추는 ‘위인설관’도 자행했다. 저명한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민주주의는 절차의 가치와 안정을 획득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셋째, 문 대통령은 윤 지검장 임명 배경을 설명하면서 “현재 검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국정농단 사건 수사 공소 유지”라고 말했다. 명백한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이자, 자신이 야당 시절 그토록 비판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 훼손’에 해당한다. 넷째, 불법적으로 4대강 감사를 지시했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감사를 지시할 수 없다. 감사원 독립성이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됐다.

그리고 다섯째, 지난 21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만 지시하고 참석하지 않은 건 군 통수권자의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부터 다음 날까지 경남 양산 사저에서 쉬었다. 여섯째, 대통령 특보가 거듭 “5·24조치를 손봐야 한다”고 떠드는 데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건 북에 의한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46인 장병에 대한 모독이다. 북측이 여전히 천안함 폭침을 남측의 자작극이며 모략극이라고 하는데 우리 스스로 이 조치를 손본다면 폭침은 누구의 책임이 되는가. 일곱째,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약속은 즉흥적이고 인기영합적인 발언이다. 이를 제안한 참모들의 ‘철학의 빈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19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 첫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취임 초엔 지지율 85%를 기록하면서 스타일 좋게 나갔다. 하지만 임기 말은 참담했다. 국민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문 대통령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도 기자는 더더욱 권력의 말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기록할 것이다. 스타일에 정신줄 놓고 실체를 놓쳤다가는 자칫 또다시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암울한 미래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mi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