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23일 세계 바둑 랭킹 1위 중국의 커제 9단과의 3번기 첫 대국에서 완승했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맞붙었을 때 간혹 보였던 오류도 없었다. 오히려 아름다울 정도로 매끄러운 수들이 이어졌다는 평을 얻었다. 커제도 “바둑의 상제(上帝) 같다”며 실력 차를 인정했다. 특별한 실수도 없었는데 어디서 왜 졌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인간 바둑계는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이세돌 상대 알파고가 기존의 기보(棋譜)를 대량학습해 실력을 키웠다면, 이번 ‘알파고 2.0’은 스스로 바둑을 두며 최적의 수를 찾아가는 강화학습을 거쳤다고 한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이날 알파고를 “미지의 우주 탐사에 쓰이는 허블 천체망원경 같은 도구”로 비유했다. 알파고를 통해 AI 등 신기술,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이 갈 길을 앞서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17일 개발자회의에서 “이제 모바일 퍼스트가 아니라 AI 퍼스트 시대”라고 선언했듯 AI는 빠르게 일상을 파고든다. 그때 공개한 구글렌즈만 해도 카메라로 담은 사물을 이해하고, 구매를 진행하고, 인간의 요구까지 미리 짐작한다. AI의 진화(進化)는 하루하루가 놀랍다.

1년여 전 ‘알파고 쇼크’를 가까이서 본 것은 행운이었다. 막연한 미래로 여겼던 AI의 폭발력을 국민이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직후 정부가 관련 대책을 쏟아내는 등 부산을 떨었으나 1년이 지나도록 국내 AI 산업은 제자리걸음이다. 산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국내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은 선진국에 4년 뒤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중구난방 정책을 일원화한다는 점에선 의미 있으나, 정부가 모든 것을 틀어쥐려는 생각이라면 위험하다. 알파고를 만든 것은 기업이고, 삼성 갤럭시S8의 ‘빅스비’가 보여주 듯 한국 기업들도 이미 적극적이다. 정부가 할 일은 민간의 창의력을 제약하는 신산업 규제부터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