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투표제 검토할 만하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세동 사회부 부장

문재인 후보가 41.1% 득표율로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주변에서 “지지하지 않은 후보를 찍었다”는 고백이 여럿 들려왔다. 한 지인은 선거일 직후 “나는 지금도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지만 투표는 문재인 후보에게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선거 막판 “영남권을 중심으로 홍준표 후보 표 결집이 무서울 정도로 이뤄지고 있다”며 “안철수나 심상정을 찍으면 홍준표가 당선된다”고 떤 엄살이 상당히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지인이 투표일 며칠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당선은 확정적이기 때문에 나는 심상정을 찍겠다”는 글을 올리자 페이스북 친구들 간에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문 후보가 지지율에서 홍준표·안철수 후보를 압도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각 후보 진영은 ‘홍찍문’ ‘안찍홍’ ‘심찍홍’ ‘유찍문’ 등 어감도 이상하고 내용은 더 해괴한 말들을 마구 만들어 퍼트렸다.

역대 대선 때마다 1위 후보는 소신투표를, 2∼3위 후보들은 전략투표를 촉구하거나 후보단일화를 시도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아예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그때뿐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를 올린 후보가 없으면 상위 1, 2위 간 2차 투표를 실시하는 결선투표제는 야권후보 난립이 유리한 여권후보가 반대하거나 여권후보 난립이 도움되는 야권후보가 반대해 여태껏 성사되지 않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반수 이상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는 박근혜(51.55%)가 유일하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36.64% 득표율로 당선됐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당시 김영삼 후보가 28.03%, 김대중 후보가 27.04%를 얻은 만큼 노태우·김영삼 후보 간 결선투표가 이뤄졌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다수의 판단이다. 김대중 후보가 40.27%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1997년 대선에선 같은 여권에서 갈라져 나온 이회창 후보가 38.74%, 이인제 후보는 19.20%를 얻었다. 역시 결선투표가 시행됐으면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을 공산이 크다.

과반에 현저히 미달해도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현행 단순 다수 득표제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노태우 후보처럼 지지하지 않는 투표 참여 국민이 63.36%로 압도적으로 많아도 대통령이 된다는 데 있다. 과반에 턱없이 미달하는 표를 얻어 당선된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기 힘들고, 그만큼 국정 추진력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제3의 후보가 표를 분산해주느냐 여부에 대통령이 결정되는 도박판 같은 ‘로또선거’는 그만 멈춰야 한다. 사표 방지 심리에 인질로 잡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지 못 하는 투표 왜곡현상도 없어져야 한다. 마침 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도 같이 실시한다고 했으니 결선투표제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과 노선으로 당당하게 경쟁하고, 그 결과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결선투표에 나간 1, 2위 후보와 군소 후보들 간 정책연대가 공개적으로 이뤄져 정치발전에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1, 2위 정당 간 무한투쟁도 완화할 수 있는 다당제 및 협치, 연정으로 가는 디딤돌도 될 수 있다. sdgim@

문화일보

문화일보

결선투표제 검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