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히라노 게이치로가 22일 방한 직후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와 문단에 대한 거침없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 방한
기존문단·아베정권 향해 독설

“日경제 호황이라고 다가 아냐
빈부격차 심해 중간층 사라져
아베노믹스에는 미래가 없다”

“아베노믹스의 미래는 없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안 읽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문학 작가로 한국에도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42)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과 선배 작가 하루키에 대해 독설을 날렸다.

23~25일 열리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서울에 온 게이치로는 22일 문화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과거 아베 정권을 비판했고 지금도 그 입장엔 변화가 없다. 현재 일본 경제가 호황이고 주가 지표가 오른다고 해서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정부가 무리하게 연금을 써서 경제를 부양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으며 특히 심각한 것은 중간층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는 문학 독자도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이든 올림픽 유치든 도움이 안 된다. 아베노믹스에는 미래가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게이치로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 속 등장 인물의 캐릭터나 그 인물이 처한 불합리한 배경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또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게이치로는 “SNS를 자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일본의 매스미디어만으로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정치에 관한 보도도 편향적이기 때문”이라며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한다”고 밝혔다.

22일 국내 출간된 신작 ‘마티네의 끝에서’(아르테)에도 이런 면모가 엿보인다. 책의 중심 테마는 러브 스토리이지만, 그 안에는 이라크 사태, 유고슬라비아의 이른바 ‘민족정화’ 만행,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탐욕’ 등 인류사의 비극과 부조리가 비판적으로 다뤄져 있다.

게이치로는 하루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일본은 물론 수많은 해외작가들에게서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았지만 하루키에게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글을 좋아하지도 않는다”며 “그동안 그의 작품을 읽었으나 ‘1Q84’를 힘겹게 읽고 난 후 불만이 생겨 그 이후론 그의 책을 읽지 않는다”고 비꼬았다.

실제로 게이치로는 에세이 ‘책을 읽는 방법’(2006), ‘소설 읽는 방법’(2009) 등을 펴내면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등 일본의 주요 작가와 글을 빠짐없이 사례로 들었으나 하루키만은 제외한 바 있다. 그리고 자신의 데뷔작이자 1999년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작인 ‘일식’(日蝕)의 화려한 의고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평가를 받는 ‘하루키 스타일’과 차별화를 꾀했다.

정권과 기존 문단 비판을 서슴지 않는 게이치로는 겉모습에서도 ‘파격’이 느껴진다. 이날도 갈색 염색 머리에 가죽끈 목걸이, 검정 캐주얼 차림으로 멋을 냈다. 게이치로는 “1년 정도 파리에 산 적이 있는데 그때 우연히 패션 관계자랑 친분을 쌓으면서 패션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며 “디자이너들은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고, 보들레르의 시대에도 그랬던 것처럼 패션과 문학은 밀접하다.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다. 하지만 이제 42세다. 나이에 맞는 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고 말했다.

그는 “40대가 주는 의미가 크다. 20~30대에는 작가로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면 이제는 해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