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제1회 희귀질환 극복의 날’(5월 23일)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착한 걸음 6분 걷기 캠페인’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맨발로 자갈길을 걷고 있다. 뉴시스

- 오늘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

국내 환자 수 35만명에 달해
“급여항목 포함이 가장 절실”

지난해 관련法 만들어졌지만
유전진단·상담 지원 등 빠져

올해로 서른을 맞은 이경은(여·가명) 씨는 대학 졸업 후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였다. 취업 후 갑자기 왕래를 끊고 ‘잠적’한 탓에 한동안 친구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었지만, 남모를 사연이 최근 알려졌다. 그는 3년 반 전부터 온몸의 근육이 마비돼 가는 병의 원인을 찾느라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친구들과 연락이 끊긴 것이었다. 큰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봐도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어렵다는 답변을 듣거나 오진을 받다가, 최근 들어서야 칼륨 부족으로 근육이 마비되는 희소질환 ‘저칼륨혈증 주기성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다. 뒤늦게 판정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긴 했지만, 3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이미 몸의 근육이 상당히 마비돼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이런 희귀질환자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희귀질환관리법을 시행했다. 그리고 23일은 처음으로 운영되는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다. 정부는 희귀질환 의약품 개발 지원 등의 종합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희귀질환자들의 고충은 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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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도 어렵고, 치료는 더 어려워 = 희귀질환자들은 대부분 이 씨와 같이 최종 확진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다수의 병원을 헤맨다. 한국희귀질환재단에 따르면 국내 희귀질환 환자 중 86.1%가 정확한 진단까지 두 개 이상의 병원을 찾아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최종 진단을 위해 10개 이상의 병원을 방문한 환자도 6.8%에 달한다. 또 전체 희귀질환자의 62%가 오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즉 질환에 맞는 치료가 아닌 엉뚱한 치료를 받아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는 희귀질환 환자 자체가 적다는 이유로 정부나 의료기관에서 희귀 질병에 대한 진단·치료 연구에 관심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은 해당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2만 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기 어려운 질환을 의미하긴 하지만, 국내 희귀질환 환자 수를 다 합하면 약 35만 명에 달한다. 또 현재까지 발견된 희귀질환은 7000여 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을 만큼 다양하다. 여기에 아직 자신의 질환을 제대로 진단받지 못한 환자들이나, 발견되지 않은 희귀질환을 포함한다면 그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조기 진단과 치료제 지원 부족 = 정부가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개선 등을 위해 지난해 ‘희귀질환관리법’을 시행했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혜택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요구사항이 치료 지원이다. 전 세계적으로 7000여 가지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돼 미국식품의약국(FDA)에 허가된 것은 약 400개다. 그중 우리나라에 허가된 희귀의약품은 239개 정도로, 이 중 40% 정도는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아 환자·보호자가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환자들은 이미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만이라도 빠르게 허가하고 급여해 신약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피부의 깊은 부분에 두드러기처럼 나타나는 ‘혈관부종’ 중 유전성 혈관부종의 경우 급성발작 시 바로 병원을 찾지 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지만, 급성발작 증상의 유일한 치료제인 ‘피라지르’는 급여가 되지 않는다. 혈액암 종류의 하나인 다발골수종의 치료제인 ‘카르필조밉’(제품명 키프롤리스)도 2015년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급여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백민환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회장은 “환자들은 신약의 보험급여를 기다리다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가 ‘메디컬 푸어’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법안을 마련해 환자들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에게 실제로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정확히 살펴 정책의 실효성을 도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필요한 유전진단 지원도 부재 = 전문가들은 희귀질환관리법안의 또 다른 한계점으로 유전상담 지원이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체 희귀질환 중 80% 이상이 유전성 질환이기 때문에 희귀질환의 조기진단과 예방에는 유전진단과 상담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전문가 평가다.

희귀질환 추정 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진단검사를 하면 확인이 어려운 희귀질환의 조기 진단이 가능하고, 희귀질환자 가족에 대한 유전상담을 통해 예방도 할 수 있다. 실제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용역에서도 국내 희귀질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효율적인 질환 관리를 위해서는 48~78명의 유전상담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시행법에는 유전상담사를 양성하거나 관련 상담과 진단에 대한 수가 산정은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질병 관련 교육상담 수가 산정은 만성질환과 암으로 한정돼 있다. 대한의학유전학회 등 전문가 단체는 이런 교육상담을 희귀질환의 유전상담으로 확대하고, 아울러 희귀질환관리법에 명시된 ‘전문인력 양성’ 대상에 유전상담사도 포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