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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 한성대 교수 행정학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미래는 없다. 당연하다. 전임 대통령들이 겪은 경험과 지식, 성공과 실패는 후임 대통령에게는 지혜의 ‘보물창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보물창고가 후임 대통령에게 봉쇄돼 있다.

그 핵심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법)이다. 이 법 제16조를 보면, 대통령기록물은 공개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면서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에 해당하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하면서,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은 생산연도 종료 후 30년이 경과해야 공개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나아가 이 법 제17조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열람·사본 제작 등을 허용하지 아니하거나 자료 제출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할 수 있는 기간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까지 돼 있다. 전임 청와대와 후임 청와대의 절연을 제도화할 수 있는 법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선정의 취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특히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정할 수 있는 범위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자의적 해석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대통령과 대통령의 보좌기관 및 자문기관 사이, 대통령의 보좌기관과 자문기관 사이, 대통령의 보좌기관 사이 또는 대통령의 자문기관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물로서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이라는 조항 가운데서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의 판단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공개 시 국가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극도로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사항이 아니라면, 전임 청와대가 결정한 정책의 배경 및 취지, 형성 과정, 주요 참여자와 그 정책 평가까지 후임 청와대에 전달돼 학습의 자료로 활용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법률이 제정된 노무현 정부 이후 정권교체 때마다 엄청난 양의 기록물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돼 후임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실상 ‘완전 백지’ 상태로 국정을 챙기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전임 정권은 최대한 자신들이 행한 모든 것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정해 후임 정권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하고, 그러한 전임 정권의 문제를 지적했던 후임 정권이 이제 전임 정권이 돼 청와대를 떠날 때는 똑같이 행동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된 기록물은, 보호 기간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된 경우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에 열람, 사본 제작 및 자료 제출이 허용된다.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만든 것은, 떠나는 정권에 대해서는 알려는 마음도 먹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겉으로는 “정권의 부침과 상관없이, 국정의 연속성”을 강조했던 역대 정권 담당자들에게 대부분의 기록물에 대한 봉인을 가능케 한 현재의 대통령기록물법은 그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의 목적처럼 대통령기록물법을 통해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면 개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기록물법이, 떠나는 정권의 우스꽝스러운 ‘방패’가 돼선 안 된다. 대통령기록물법 전면 개정을 통해 ‘뒷모습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대통령에 대한 기록이 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