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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참전자 가족 이야기 다큐 제작… 루이스 에번스 씨

“한국전에서 전사한 외삼촌의 행적을 따라 외할머니가 왔고, 어머니에 이어 제가 또 오게 됐습니다. ”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아들을 찾아 1961년 호주에서 부산까지 찾아온 외할머니의 여행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는 루이스 에번스(55·사진) 씨는 18일 “다큐가 호주와 한국의 문화적, 정서적 교류에 기여했으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에번스 씨는 호주 시드니 한국문화원·아리랑 TV와 함께 지난해 출간한 ‘부산으로 가는 길(Passage to Pusan)’을 바탕으로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이 다큐는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빈센트 힐리(1926~1951) 병장의 어머니인 델마 힐리(1905~1971) 씨가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하고 10년 만에 아들의 행적을 찾아 나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50년 9월 참전한 힐리 병장은 1951년 3월 7일 강원 원주 매화산 전투에서 적의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저널리스트인 에번스 씨는 1961년 당시 56세이던 외할머니가 부산을 방문하면서 쓴 여행일기를 토대로 편지와 생존 가족들의 증언 등을 책에 담았다. 자녀 10명을 뒀던 힐리 씨는 가장 의지했던 큰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하고 실의에 빠져 삶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큰아들이 묻혀 있는 묘지에 꼭 찾아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악착같이 일하며 돈을 모았다. 힐리 씨는 마침내 1961년 4월 15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선 C급 선실 표를 끊어 부산으로 향한 약 1만5000㎞의 여행길에 올랐다. 일본을 거쳐 5월 1일 부산 유엔 묘지에 도착해 아들의 묘비 앞에 선 그는 부산에 머문 4일 내내 아들의 묘지를 떠나지 못했다.

힐리 씨의 한국 방문은 3년 뒤 언론에 보도되면서 태평양을 뛰어넘는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 한국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김창근(1925~2014) 여사는 힐리 씨의 이야기를 접하고 호주 대사관으로 ‘힐리 병장의 한국 어머니가 돼 묘지를 보살피겠다’는 내용의 한글편지를 보냈다. 이게 인연이 돼 편지교류가 시작됐다. 서울에 살던 김 여사는 매년 부산 힐리 병장의 묘지를 찾아가거나 관리소에 돈을 보내 관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힐리 씨가 1971년 갑자기 사망하면서 둘 사이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김 여사의 아들이 호주로 이민을 가면서 1989년 두 가족 간 만남이 이뤄졌고, 에번스 씨는 김 여사의 손녀딸과 만나 우정을 쌓고 있다. 호주 시드니 한국문화원은 7월 말 다큐를 완성해 오는 8~9월 호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하는 호주한국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자료·사진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부산=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